사회 사회일반

"소아과 간판 내린다" 동네병원 의사들 '폐과 선언' 초강수 둔 이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29일 의협 회관서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

정부 정책 실효성 떨어진다며 강도높은 비판 제기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픈 아이들을 고쳐 주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소아청소년과라는 전문과는 이제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4층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를 선언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가 30년째 동결된 가운데 최저 임금과 물가가 나날이 오르고 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저출산 흐름과 코로나19로 인한 진료량 급감이 맞물리면서 더이상 버티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폐과'를 선언한 배경이다. 올해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이 16.6%까지 하락하고 문닫는 소아 응급실이 속출하면서 정부가 당근책을 연달아 내놨지만 개원의사들이 체감할 만한 혜택은 없었다는 불만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임 회장은 "지금 상태로는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가 없다"며 "지난 10년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은 25%가 줄었다. 그나마 지탱해주던 예방접종은 정치인들이 마구잡이식 선심 정책을 펴면서 100% 국가사업으로 저가에 편입됐다. 국가예방접종사업은 시행비를 14년째 동결하거나 100원 단위로 올려서 소청과의 유일한 비급여 수익원이었던 예방접종은 아예 없어졌다"고 말했다. 올해 국가필수예방접종에 마지막으로 편입된 로타바이러스장염 백신의 경우 질병관리청이 기존에 소청과에서 받던 접종료의 40%만 받도록 강제하고 있다는 게 임 회장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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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청과 전문의는 의대만 나온 의사(의대 졸업 후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일반의)보다도 수입이 적다. 직원 2명의 월급을 못 줘서 1명을 내보내고 그나마 남은 직원의 월급마저 못 줘서 폐업한 소청과 의원이 결국 지난 5년 간 662개에 달한다"며 "소청과의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사실상 30년째 동결 상태로, 동남아 국가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의사회에 따르면 국내 의료수가 체계상 소청과는 비급여 항목이 드물다. 환자가 어린이여서 진찰 외에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처치와 시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진찰료로만 수익을 내는 셈인데, 1인당 평균 진료비는 30년 간 1만 7000원 가량으로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의원급 의료기관의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는 1만7611원이었다. 설상가상 인턴의 소청과 지원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소청과 전공의는 물론 소청과 세부 전문의도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달 ‘소아 의료 체계 개선 대책’을 통해 중증 소아 환자를 담당하는 어린이 공공진료센터와 24시간 소아 환자에 대응할 수 있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를 각각 4곳씩 늘리겠다고 밝혔다. 24시간 소아전문상담센터 시범사업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의사회의 지적이다.

임 회장은 "소청과 뿐 아니라, 소아외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신경외과, 소아마취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안과, 소아이비인후과, 소아재활의학과, 소아응급의학과 등 소아를 진료하는 모든 의료 영역의 의사들이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는 형편"이라며 "정작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소청과 의료 인프라 구축과 지원율 제고에 필요한 정책은 커녕 빈 껍데기 정책들만 내놓고 있어 올해 레지던트 소청과 지원율이 더 떨어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청과 의사 인력 공백이 문제의 핵심인데 복지부가 엉뚱하게 시설 확충을 해결책으로 내세웠다”며 “아이들은 대면 진료조차 오진 가능성이 있는데 소아 질환의 특성과 어려움을 무시한 채 전화로 증상을 상담하고 처치 안내를 하는 것은 정신 나간 발상”이라고도 덧붙였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폐과 선언 직후 입장문을 통해 필수의료 지원대책과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 발표 이후 이행 상황 점검 결과를 공유했다. 임인택 보건의료정책실장은 “매월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앞으로도 분기별 이행점검 결과를 설명하고 지속적으로 의료현장과 소통하면서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대책을 추진하겠다”며 "국민들의 소아의료 이용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긴급대책반을 구성해 상황을 점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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