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식별 개인정보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데이터의 유통을 막아 AI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단순정보와 개인정보 처리를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국내 스타트업들이 데이터 경제를 지켜낼 주역으로 자리매김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병원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은평을)은 ‘스타트업, 개인정보 활용과 보호’ 토론회를 지난 3월 30일 국회의원회관 1소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이 토론회는 개인정보보호법학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함께 주관했다.
이번 토론회는 디지털 대전환과 코로나19로 촉발된 비대면 사회를 이끄는 혁신 스타트업이 개인정보를 어떻게 보호하고 활용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마련됐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산업 현장에 스타트업이 혁신을 이끌 수 있도록 지원하되, 민감한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호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다.
발제를 맡은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현행 우리 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이 비식별 규제에 치중하다 보니, 데이터 가용성이 떨어지며 인공지능 발전을 뒤쳐지게 한다. 그 결과 국내 최고 기업인 네이버조차 우리나라에서 수집된 데이터가 아니라 중국의 데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는 단순 정보처리로 볼 수 있는 것까지 개인정보 처리로 똑같이 규제하고 있다. 현행 비식별 개인정보는 사용되는 맥락을 고려해 일정한 경우에만 보호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가령 차량번호의 경우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분류상 개인정보에 해당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실제 소유자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구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개인정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기업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보상해주는 방법으로 살아남을 수 있지만 스타트업은 사실상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정부와 국회가 스타트업들이 예외적으로 개인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방안부터 시급히 마련해 야 한다는 것이다.
구 변호사는 “정보처리와 개인정보 처리를 구분해 스타트업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때, 스타트업이 데이터 경제를 지켜낼 거점AI 주역이 될 것”이라며 “이러한 근본적인 리스크가 해결되어야 스타트업 투자가 활성화되고 글로벌 AI시장에도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정원준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 호주, 일본의 개인정보 보호 법체계를 소개했다. 특히 스타트업이 대규모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수집할 수 없는 만큼 개인정보를 수집, 확보하는 데이터 거래·유통 생태계를 확립하고, 거래 계약의 표준을 확립할 것을 제안했다.
김법섭 자비스앤빌런즈 대표는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기울인 노력을 소개한 뒤 명확한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영호 카카오 개인정보보호팀 팀장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과정에서 카카오가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시도한 사례를 소개했다.
이병남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정책국 과장은 “비식별 정보가 어떻게 개인정보로 판단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서 “새로운 개인정보보호법이 올해 9월부터 시행 예정인데, 새 법에서는 스타트업의 개인정보 활용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