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꺼져가던 日 배터리 불씨 되살린 美 IRA…中 핵심광물 정말 배제 가능할까 [biz_플러스]

IRA 세부지침 "예상 수준" 평가 속

美, FTA 미체결국 日 광물협정 맺어

핵심 광물 원산지 조달국으로 인정

韓, 미국 시장에서 日과 경쟁 불가피

해외우려기업 가이드라인 언급 없어

전세계 배터리 업계 中 의존도 높아

지분투자, 합작투자 형태 묵인 가능성

생산세액공제 한도 씌울지 여부도 관심

아르헨티나 살타 지역의 포스코아르헨티나 리튬 폰드 조성 공사현장. 사진제공=포스코홀딩스아르헨티나 살타 지역의 포스코아르헨티나 리튬 폰드 조성 공사현장. 사진제공=포스코홀딩스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발표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관련 세부 지침은 업계가 예상한 수준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번 세부 지침에는 해외우려기업(FEOC)과 생산세액공제(AMPC) 등 국내 배터리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항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빠져 있어 향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미국이 이번 세부 지침 발표를 앞두고 자유무역협정(FTA) 미체결국인 일본과 핵심광물 협정을 맺는 방식으로 원산지 조달국 지위를 인정함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배터리 핵심광물 규정 적용의 전제 조건이었던 FTA 체결국의 유리한 지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일본의 거센 도전에 맞서야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미국 재부부의 IRA 세부지침 발표 이후에 곳곳에 도사린 악재들을 짚어봤다.

해외우려기업 가이드라인 빠져…'안했나, 못했나'


리튬 자원 확보량 세계 1위 기업인 중국의 ‘간펑리튬’ 본사 건물. 서울경제DB리튬 자원 확보량 세계 1위 기업인 중국의 ‘간펑리튬’ 본사 건물. 서울경제DB


3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와 소재회사들은 이번 IRA 세부 지침에서 빠진 해외우려기업의 포함 범위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FEOC에 중국의 어떤 기업들이 포함되고, 예외로 인정받는 경우는 무엇인지에 따라 국내 업체들의 광물조달 전략도 달라질 수 있어서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공개한 IRA 백서에서 중국·러시아·이란 등 FEOC에 조달한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사용을 금지시켰다. 이에 따라 업계는 이번 세부 지침에 FEOC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국 업체들은 양극재의 중간재인 전구체(니켈·코발트·망간의 혼합물)와 음극재의 원료인 흑연을 주로 중국에서 조달한 뒤 한국에서 양극재와 음극재를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한다. 이번 IRA 세부지침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 조달한 핵심광물도 FTA 체결국인 한국에서 50% 이상의 가치를 더해 가공하면 보조금 대상이 된다고 규정했다. 배터리 업체들이 지금의 생산 공정을 그대로 유지해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앞으로 공개될 FEOC에 중국 기업 전체가 포함될 경우다. 지금은 중국산 핵심광물을 한국에서 가공해 사용할 수 있지만 2025년부터는 이조차 아예 막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은 지난해 8월 IRA 시행을 전후로 광물 조달처를 호주·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 말까지 리튬·흑연 등 핵심광물의 중국 수입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워낙 중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간펑리튬과 캐나다업체 리튬아레미라카스가 운영하는 아르헨티나 후후이주 카우차리 올라로즈 염호 리튬 프로젝트 전경. 간펑리튬이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리튬아메리카스간펑리튬과 캐나다업체 리튬아레미라카스가 운영하는 아르헨티나 후후이주 카우차리 올라로즈 염호 리튬 프로젝트 전경. 간펑리튬이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사진=리튬아메리카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산화리튬과 산화리튬의 수입 36억7600만달러 가운데 중국 수입이 32억3200만달러로 87.9%나 차지했다. 2021년(83.8%)보다 4.1%포인트 늘었다. 수산화리튬은 국내 배터리사의 주력 제품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주로 사용된다. 흑연도 지난해 전체 수입 1억3100만달러 가운데 중국의 비중이 93.9%를 차지했다. 흑연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2017년 79.5%에서 2021년 87.4%, 2022년 93.9% 등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미국이 이번에 FEOC의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놓지 ’못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배터리 생산시설의 상당 부분을 한국 배터리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단기간에 낮추기 어렵다면 미국도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속도를 늦추는 게 합리적이다.

더욱이 핵심광물의 중국 의존 문제가 한국 뿐만이 아닌 전 세계 배터리 업계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문제라면 미국 재무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배터리 관련 회사와 광물업체들은 중국기업과 합작하거나 지분 투자를 유치한 경우가 많은데, 미국이 이런 방식까지 금지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는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가 워낙 높다 보니 단시간에 이를 해소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IRA 취지상 중국 기업들이 FEOC에 포함되겠지만 중국이 지분투자 형태나 합작 형태로 핵심 광물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막을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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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우선주의’ 발톱 드러낸 美…日과 광물협정 맺어 韓견제?


미국은 지난해 12월 공개한 IRA 백서에서 전기차 세액공제 조항 가운데 ‘핵심 광물 요건’으로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광물의 40%(2027년까지 80% 이상으로 연도별 단계적 상승)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채굴·가공해야 375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배제되면 FTA 체결국인 한국 기업들이 반사 이익을 얻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는 IRA 세부지침에서 일본을 핵심광물 원산지 조달국에 포함시켰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IRA 세부지침 발표를 불과 며칠 앞두고 일본과 ‘핵심광물 협정'을 맺었고, 미 재무부는 이를 근거로 일본에게 FTA 체결국과 동일한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파나소닉은 1990년대 초 세계 최초의 원통형 리튬이온 배터리인 1865 배터리를 개발한 회사다. 미국 1위 전기차 회사 테슬라에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는 등 옛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합뉴스파나소닉은 1990년대 초 세계 최초의 원통형 리튬이온 배터리인 1865 배터리를 개발한 회사다. 미국 1위 전기차 회사 테슬라에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는 등 옛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변심(?)에 한국 업체들은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다. 미국이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일본에 손을 내밀면서 FTA 체결국이라는 한국의 유리한 지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은 소재 강국이다. 한국이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를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한 나라다. 일본의 대표적인 배터리 회사인 파나소닉은 1990년대 초 세계 최초의 원통형 리튬이온 배터리인 ‘1865 배터리(1865는 지름 18mm, 높이 65mm의 줄임말)'를 개발했다.

파나소닉은 K 배터리의 기술력과 중국 배터리의 가파른 성장에 밀려 있는 형국이지만 언제든 옛 영광을 재현할 태세다. 토요타·혼다 등 일본 완성차 업체의 전동화 전환이 늦어지면서 그간 기술 발전 속도가 더뎠지만 IRA 핵심원산지 조달국 인정을 계기로 꺼져가던 일본 배터리의 불씨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한국업체들로선 미국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일본과 광물협정을 맺은 미국의 결정을 두고 ‘자국우선주의’의 발톱이 다시 드러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IRA 보조금 제도 자체가 미국의 이익 관점에서 설계된 것이다보니 ‘배터리 혈맹', ‘배터리 동맹’이란 말에 취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IRA의 당초 규정은 FTA 체결국에 유리한 지위를 부여한 것이었지만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순간 예외 규정을 만드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라며 “지금은 배터리 제조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도움이 되기 때문에 손을 내민 것일 뿐 앞으로 미국의 이익 앞에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 최대 화두는 ‘생산세액공제’…한도 설정 여부 관심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미시간주 배터리공장.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미시간주 배터리공장. 사진제공=LG에너지솔루션


업계는 AMPC의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은 점도 아쉬워하고 있다. IRA의 배터리부품과 핵심광물 규정은 전기차 제조 업체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것과 관련돼 있다. 세액공제 혜택을 앞세워 전기차가 많이 팔릴 수록 배터리 업체의 수익도 늘어나지만 직접적인 혜택이라고 보긴 어렵다.

반면 AMPC는 미국 시장에서 배터리를 제조하는 회사가 직접 세액공제나 현금 수령을 통해 회계상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 이 때문에 배터리업계가 더 관심을 기울이는 조항이기도 하다. AMPC는 미국에서 배터리 셀을 생산할 때 1㎾h당 35달러, 배터리 모듈까지 만들 때 추가 1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보조금 혜택을 받는 기업들은 세액공제와 현금 수령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SK온 등 미국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거나 새로 짓고 있는 기업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AMPC로 두 업체가 2조원 가량의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SK온 미국 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사진제공=SK온SK온 미국 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사진제공=SK온


이안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은 얼티엄셀즈 1공장은 작년 9월부터, 2공장은 올해 하반기부터 가동되면서 최대 가동률을 40% 정도로 가정할 경우 대략 1조8000억원 규모의 세제혜택이 예상된다”면서 “SK온도 1공장이 지난해 상반기, 2공장은 올해 가동을 시작하면서 최대 가동률 40%를 가정할 경우 4000억원의 규모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한정된 예산을 감안할 때 미국 재무부가 이 조항을 그대로 유지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북미 지역의 배터리 공장신설의 대부분을 한국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현금 수령보다는 세액공제를 선택하도록 유도하거나 보조금의 한도를 설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아무리 달러 발권력을 갖고 있더라도 당초 계획했던 예산을 넘어서는 세액공제나 보조금에 대해선 부담을 가질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AMPC 제도를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 어떤 형태로든 수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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