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산유국들의 ‘기습’ 감산 발표에 국제 유가가 출렁이고 있다. 유가 급등세가 인플레이션을 다시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감산 조치가 “생각만큼 나쁘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 불안을 진정시키는 모습이다. 미국이 이번 감산 결정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해당 조치를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80년 전략적 파트너’로 칭하며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데는 중동 동맹과의 관계 악화를 막으려는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6.28% 급등한 배럴당 80.2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가격을 인상한 지난달 6일(80.56달러)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격 상승폭은 지난해 4월 12일 이후 1년 만의 최대를 기록했다. 런던선물거래소의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역시 전일 대비 6.31% 오른 배럴당 84.93달러로 지난해 3월 이후 가장 크게 뛰었다.
전날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가 발표한 자발적 추가 감산 조치가 유가를 자극하고 있다. 이들은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감산을 예고했는데 지난해 10월 합의된 250만 배럴 감산을 합하면 총 감산량은 366만 배럴에 이른다. 전 세계 일일 수요의 3.7%에 해당하는 대규모 감산이 현실화될 경우 원유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향방에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OPEC+의 결정을 비판하면서도 감산 주도국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직접적인 질타는 피하는 모습이다. 이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감산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80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전략적인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어 “양국이 서로의 말과 행동에 항상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략적 파트너십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해 10월 OPEC+의 감산 결정 때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 “근시안적 결정”이라는 고강도로 규탄과 함께 “후과”를 경고했던 모습과 대조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감산 조치를 비난하는 것과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애쓰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