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일선 경찰들에게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통령이 직접 마약 범죄 대응을 전쟁으로 표현할 만큼 마약 범죄를 뿌리 뽑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강한 중독성이라는 마약류 특성 탓이다.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마약 범죄의 동종(同種) 재범률은 36.6%로 절도(22.8%)와 강도(19.7%), 폭력(11.7%), 살인(4.9%) 등 다른 범죄들보다 눈에 띄게 높다. 단속과 처벌은 물론 중독과 재범의 고리까지 끊어내야 비로소 마약 범죄를 근절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마약류 중독 정신건강 총괄기구(가칭)’ 설립을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10일 “마약 사범은 늘어나는데 이들에 대한 치료와 재활 지원이 미흡해 재범률이 높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마약류 범죄에 대한 관리를 단속과 처벌에서 치료와 재활까지 넓히고 이를 총괄할 조직을 신설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들여다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이런 총괄기구를 설치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국립정신건강센터와 식품의약품안전처·대검찰청 등 유관 기관 간 협업 방안, 재원 조달 방법 등을 순차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이미 우리 정부는 마약류대책협의회를 통해 마약 범죄에 총체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마약류대책협의회는 법무부와 관세청·식약처 등 14개 유관 부처로 구성된 협의체로 매년 1~2회 모여 마약 범죄 근절을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상설 기구가 아닌 탓에 지속적인 관심을 얻지 못했고 각 부처별로 이해관계가 달라 실질적인 공조와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마약류대책협의회에 참여하는 한 정부 부처의 관계자는 “협의회 존립에 대한 법적 근거가 지난달에야 마련된 것 자체가 그간 협의회의 위상이 얼마나 낮았는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런 탓에 마약 사범에 대한 치료 조치는 마약 범죄가 불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마약 사범은 2017년 1만 4123명에서 2021년 1만 6153명으로 늘어났는데 같은 기간 치료 조치 건수는 346건에서 298건으로 오히려 줄었다. 이 중 마약 사범이 스스로 치료를 신청한 경우(279건)를 제외하면 검사가 치료를 의뢰하거나 청구한 건수는 19건으로 전체 치료 건수의 6.3%에 그친다. 단속과 처벌에 초점을 두는 수사기관 측에서는 이들에 대한 치료 조치에 관심도 적고 적극적이지 않았던 탓이다. 마약 사범의 치료를 담당하는 기관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치료 제도를 이용하지 않는 한 우리가 마약 사범의 치료를 유도하기에는 제도적 한계가 있다”며 “결국은 마약 범죄에 있어 각 부처와 기관이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달라 긴밀히 협업 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꼬집었다.
부처 간 공조가 안 되는 사례는 열악한 재활 인프라에서도 드러난다. 일례로 최근 수사 기관은 마약 사범의 조속한 사회 복귀를 위해 재활 프로그램 이수를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는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 제도 활용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활 관련 인프라도 같이 확충돼야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재활 조치를 주도하는 식약처 산하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의 재활 관련 종사자 수는 2018년 1명에서 2022년 12명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재활 교육 이용자가 99명에서 815명으로 8배 이상 불어난 것에 비하면 종사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종사자 1명이 67.9명의 재활을 책임지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마약류 범죄가 점점 일상 속으로 침투하며 정치권과 국민의 관심이 커진 지금이 이런 총괄기구 설립에 대한 논의를 적극 추진할 적기”라며 “미국 마약청, 태국 마약 단속청 등 해외 기관을 참고해 마약 범죄 수사와 재활, 치료, 국제 협력 등에서 부처 간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구 설립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