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납치 살해 사건의 범해 동기로 금품을 받고 코인원에 단독 상장된 퓨리에버코인이 지목된 가운데 검찰 수사에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상장 과정의 병폐가 밝혀졌다. 검찰은 유가증권시장은 자본시장법 등 관련법령에서 불공정 행위를 단속하고 있지만 가상자산 시장은 관련 제도가 부재해 시장조작 세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11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이승형) 가상자산 비리 수사팀은 지난 1월부터 진행한 ‘코인거래소 상장 비리 및 코인시장조작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수사팀은 코인원의 상장 리베이트 비리를 수사한 결과 코인 상장브로커 두 명과 이들로부터 금품을 제공받고 코인을 상장시켜 준 거래소 임직원 두 명을 모두 구속했다.
코인원 전 상장담당 이사 A씨는 지난 2020년부터 2년 8개월 동안 총 20억 원 가량을, 코인원 전 상장팀장 B씨는 2년 5개월 간 총 10억 4000만 원을 상장 대가로 챙겨 배임수증재 혐의를 받는다. B씨는 교부 받은 코인을 현금화해 한남동 빌라 구매 등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들이 처음부터 시세조종이 예정된 코인을 거래소에 상장시켜 거래소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고 있다.
수사팀은 수사 과정에서 주로 국내 거래소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일명 ‘김치코인’에 코인다단계업자, 상장브로커, MM업자 등 세력이 붙어 다수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는 구조적 병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리딩방 투자회사 등 코인 다단계업자가 상장 전에 투자금을 불법으로 모집한 뒤 코인 발행업자가 상장 브로커와 거래소 상장 직원에 뒷돈을 내고 거래소에 코인을 상장한다. 이후엔 마켓메이킹(MM, Market Making or Market Maker) 작업으로 시세를 조종한 뒤 고가에 코인을 매도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수사팀은 최근 강남 부녀자 살인사건 배경이 된 퓨리에버 코인도 이 같은 구조로 다수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수사팀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유통 가상자산 총액 중 62%가 거래액 규모가 영세한 김치코인이 차지한다”면서 “김치코인은 유동성 부족, 시세 조종행위 등에 취약해 거래소는 투자자들 손해를 막기 위해 충분한 검토 뒤 상장을 결정할 의무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관점에서 수사팀은 거래소 내부 상장심사 절차가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할 거래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거래소 상장담당 이사와 상장팀장이 코인 시장조작세력과 결탁해 상장 대가로 금품을 수취했다는 지적이다. 수사팀은 이어 유가증권시장에선 공시의무위반, 시세조종 등 불공정 행위를 엄중히 처벌하고 있는 반면 가상자산 시장은 관련 법령과 제도 부재로 시장조작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짚었다.
수사팀 관계자는 “코인 백서 및 언론 홍보 내용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는 위험하다”면서 “별다른 이유 없는 가격 급등락은 MM작업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