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무엇보다 귀를 활짝 열어 경제 관련 장관이나 참모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데 충실해야 합니다.”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은 1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변 경제 전문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본인의 견해를 더해 최종적으로 결단을 내리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1997년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 이사장은 전날 IMF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낮춘 것과 관련해 “반시장적 경제구조를 방치하면 2~3년 안에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정치권과 정부가 경제 발전의 최대 걸림돌”이라면서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은 시장 원리에 따라 동사다발적으로 추진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문했다. 최근 ‘김인호의 대통령 경제론’이라는 책을 펴낸 김 이사장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인가.
△대통령은 경제 관련 장관이나 참모들의 이야기를 우선 들어야 한다. 그들의 말을 다 듣고 본인의 견해를 더해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다.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듣지 않고 먼저 나선다면 소통이 이뤄질 수 없다. 장관·참모들이 대통령 앞에서 해야 할 얘기가 있는데 대통령이 먼저 주관적인 말을 해버리면 언로가 차단되는 결과를 빚게 된다.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최악과 최선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대통령 취임 직후 경제장관들이 보고하는 자리에 배석한 적이 있는데 대뜸 “소주 값 왜 올렸소”하고 질타하더라. 보고를 듣는 것보다 본인의 생각을 장시간 늘어놓는 모습을 보고 ‘이거 큰일 났구나’ 싶었다. 하지만 임기 중반쯤 들어서면서 말수가 확연히 줄고 참모들의 말을 많이 듣더라. 다 듣고 일단 결론을 내리면 좌고우면하는 일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부처 간 이견으로 이런저런 갈등의 여지가 없도록 명쾌하게 ‘교통정리’를 해줬다. 그는 적어도 임기 중반 이후 경제정책에서는 지도자가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실천한 대통령이었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가.
△항간에 윤 대통령이 말을 좀 많이 한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 자체가 매우 아쉽고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은 무조건 많이 들어야 한다. 사람에게 왜 귀가 두 개이고 입이 한 개이겠나.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뜻이다. 대통령은 보통 리더들보다도 두 배 더 듣고 말을 두 배 이상 아껴야 한다. 이는 비단 경제뿐 아니라 안보·사회 등 전 분야에 적용되는 문제다. 지도자는 항상 듣고 생각하고 판단한 뒤에 나서야 한다. 윤 대통령이 이 원칙을 잘 지켜준다면 대단히 훌륭한 대통령에 오를 것으로 믿는다.
-윤 대통령은 소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우리가 부닥친 경제 문제들이 굉장히 심각하다. 하나하나가 대통령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이다. 그런 만큼 다수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정부 진용을 보면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는 물론 비서실장과 국무조정실장까지 경제 부처 출신들로 채워졌다. 이렇게 막강한 경제 전문가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들의 머리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 않겠나. 거듭 말하지만 장관과 참모들에게 더 많이 말하게 하고 대통령은 말을 아끼고 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떤 상황인가.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았을 당시의 구조적 위기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경쟁력의 위기가 특히 심각하다. IMF는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7%에서 1.5%로 낮췄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한국 경제의 성장 전망치를 두드러지게 하향 조정했다.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친다면 걱정할 게 없겠지만 경제성장률은 되레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30년 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3년 후에 그런 상황이 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작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나.
△경제 분야의 경쟁력은 오직 경쟁적 구조에서만 생긴다. 기업들이 마음껏 경쟁할 수 있는 시장에서 기업의 판단대로 어떤 제약도 느끼지 않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전혀 관여하지 않고 기업 마음대로 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잘하든 잘못하든 100% 기업의 몫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면 기업들이 죽기 살기로 경쟁하지 않겠나. 재벌 시스템도 도덕·윤리 등의 원리가 아니라 경쟁 원리로 작동하도록 구조를 바꿔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경쟁력 위기 상황에서 정책 당국에 당부할 점은.
△정부의 역할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정부와 기업 관계에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잘 모르고 자신이 없으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이것저것 건드려 다 망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기업이 중심이 되는 경제를 만들어야 경쟁력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무엇인가.
△시장경제와 자유기업주의 원리에서 경제를 운용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김영삼 정부 후반기부터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 사명을 제대로 이행한 대통령이 없었다고 본다. 특히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이탈했다. 문 정부 때 시행된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제, 노조에 편향된 노동정책, 기업 규제 등은 하나같이 시장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들이었다.
-윤 대통령의 경제적 사명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문 전 대통령이 파괴한 경제 질서를 원상 회복시키는 것이 첫째이고, 그다음은 자유시장 경제와 자유기업주의를 복원하는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하루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가측한 상황에 처해 있다. 새로운 이슈와 기술·상품 등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런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경제구조가 유연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신과 같은 존재가 있어 쏟아지는 난제들을 척척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임과 권한이 분산된 유연한 경제 운용 시스템을 만들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시장경제가 유일무이한 해법이다. 경제 상황 변화에 직접 대응하는 경제 주체가 시장경제의 주역이 돼야 한다.
-윤 정부가 표방한 노동·연금·교육 개혁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나.
△3대 개혁도 철저히 시장 원리에 입각해 추진해야 한다. 자신이 낸 것보다 더 받는 연금 제도가 지속 가능할 수 있나. 교육도 학교 간 경쟁이 더 활성화되고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노사 관계는 시장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개혁이 시급하다. 노동·연금·교육 개혁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핵심 과제들이다. 철저하게 시장 원리에 따라 동시다발적으로 밀어붙여야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 경제의 발전을 가로막는 제약 요인을 꼽는다면.
△정치권과 정부가 경제 발전의 최대 걸림돌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회주의 사상이 제일 큰 문제다. 사회주의 나라 중 경제가 잘된 사례가 있나. 오죽하면 공산국가인 중국도 경제만은 시장경제를 하겠다고 나섰겠는가. 문 정부에서 취해진 모든 비합리적인 경제적 처방은 사회주의적 발상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반시장 성향의 더불어민주당이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 국회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경제 발전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국회가 이를 입법으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반대로 가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부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보는 이유는 뭔가.
△관료주의가 정말 심각하다. 대통령이 관료들을 최대한 활용하되 관료들에게 포획돼서는 안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부처 이기주의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폐단이다. 한국은 미국 등 선진국들과 달리 정부 조직 원리가 산업별·품목별로 이뤄져 특정 분야에만 매몰돼 국민경제 전체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기 어려워진다. 이제는 정부 조직을 기능에 따라 수요자 중심으로 전면 재편해야 한다.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검찰 개혁이다.
-검찰 개혁이라면 혹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말하나.
△검수완박은 수사권의 기술적 배분 문제로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검찰이 진정으로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지키면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법치주의가 무너지면 시장경제도 자유주의경제도 잘될 수가 없다.
He is…
194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러큐스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경제기획국장·대외경제조정실장을 거쳐 철도청장,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지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중소기업연구원장·한국무역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1년 4월부터 23년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을 맡아 활발한 집필·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