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산업기술 유출 수사 때 전문가와 연계해 기술의 가치 평가 등 피해 기업의 목소리를 평가·정리해 형사 절차에 반영하는 ‘기술가치 평가제도’를 추진한다. 국가 경제 및 안보와 직결된 기술 유출 사건 수사는 첨단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재판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수사 당국이 피해 기업보다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경찰이 기술가치 평가제도 도입을 통해 국내 기술보호수사 유관 기관과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피해 기업의 목소리를 형사 절차에 적극 반영해 수사 전문성 강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13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경제안보수사 테스크포스(TF)는 최근 치안정책연구소에 기술가치 평가제도 도입을 검토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특별단속 등 총력 대응하고 있지만 기업의 목소리를 형사 절차에 반영할 수 있는 절차는 없는 상황”이라며 “산업기술 전문가가 피해 내용을 체계적으로 평가해 수사에 도입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검찰과 특허청 등 국내 기술보호수사 유관 기관 및 해외 수사기관의 기술가치 평가 수사 활용 사례 분석과 특허청과 중소벤체기업부 등에서 운영 중인 기술가치 평가사업과 경찰 수사 연계 방안, 피해 기업 목소리 형사 절차 반영 방법 등이 논의될 것으로 관측된다. 경찰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르면 올해 안에 기술가치 평가제도 표준 모델을 전국 주요 시도청에서 시범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들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국가 간 산업 주도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핵심 산업 분야의 기술 탈취 시도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산업기술 유출 등 경제안보 위해범죄 수사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산업기술 유출 사범은 326명으로 224명이었던 전년 대비 45.53%급증했다. 기술 탈취에 따른 피해액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 규모는 연간 56조 2000억 원으로 이는 국내 전체 연구개발(R&D) 투자액인 93조 1000억 원의 60%를 넘었다.
더 큰 문제는 상대적으로 대기업보다 타격이 큰 중소기업이 주로 범죄의 희생양이 된다는 데 있다. 지난해 발생한 기술 유출 사건 104건 가운데 중소기업은 88건으로 전체의 84.61%에 달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산업기술 유출 범죄는 유형보다 무형 피해가 더 큰 만큼 정밀하고 체계적인 피해 조사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며 “피해 기업들이 수사기관보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이들의 목소리가 형사 절차에 반영되면 수사 역량 강화와 피해 기업 보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산업기술 유출 등 경제안보 위해범죄에 총력 대응하기 위해 2월부터 10월까지 9개월간 특별단속을 시행하고 있다. 경찰청에는 전담 부서인 경제안보수사TF가 신설됐고 전국 57개 경찰서에도 안보수사팀이 꾸려졌다. 전국 202개 경찰서는 산업기술유출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