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산업을 무시한 탄소 중립은 쉽습니다. ‘샤힌 프로젝트’같은 산업 분야의 초대형 투자를 접으면 돼요. 하지만 이런 투자 프로젝트에서 창출되는 일자리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김상협(60)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은 이달 14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탄소 중립의 본질적 어려움은 우리 산업·경제·일자리를 함께 보듬으며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것처럼 기후·환경 문제는 좌우를 넘어서는 사안”이라며 이달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탄소중립기본계획)’이 과학적 근거에 따라 수립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은 2030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비롯해 중장기 탄소 중립 전략을 담고 있는 국가 최상위 법정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8월 탄녹위 민간위원장에 선임돼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수립을 총괄했다. 야당과 일부 환경 단체들은 탄소중립기본계획안에 대해 극렬 반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발표한 NDC에 비해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치가 3.1%포인트 감소한 11.4%로 설정되자 ‘기업 봐주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산업 부문의 목표 조정은 바이오나프타 수급 곤란과 수소 혼소기술 상용화 시점 지연 등 현실적인 이행 가능성을 감안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에쓰오일이 울산에 9조 원을 들여 발주하는 국내 최대 규모 석유화학 프로젝트인 샤힌 프로젝트를 예로 들었다. 샤힌 프로젝트는 연 추산 탄소 배출량만 330만 톤에 달해 산업계 NDC 달성의 ‘복병’으로 꼽혔다.
김 위원장은 “사실 샤힌 프로젝트도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다”며 “정권이 바뀌었으니 샤힌 프로젝트는 온실가스를 위해서 멈춰야 한다고 말해야 하나”고 반문했다.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 최소화 사이의 ‘균형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는 “샤힌 프로젝트와 관련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 정도 줄이도록 신경을 엄청 많이 썼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는 산업 부문 감축 부담을 줄이는 대신 원자력발전을 늘리는 쪽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이는 야당과 시민단체로부터 ‘친원전’이라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에너지에서는 이념이 들어가기보다 무엇이 탄소 중립으로 이끌 것인지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기술중립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윈스턴 처칠은 그간 석탄만을 에너지원으로 쓰던 전함에 석유까지 포함하려고 하면서 비판을 받았는데 이때 ‘영국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오직 다양성(only variety)’이라고 말했다고 한다”며 “이를테면 에너지믹스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상호 보완되게 구성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향후 주요 과제로 기후변화적응법(가칭) 제정을 꼽았다. 그는 “탄소중립기본계획 공청회 과정에서 기후변화 적응이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최근 빈번한 가뭄이나 산불에서 볼 수 있듯이 기후적응에 대한 범부처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기후변화적응법에는 국가와 지자체·공공기관·산업계 등이 기후적응 분야 주체의 거버넌스를 체계화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CCUS)과 기후테크 등 신산업 육성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시행하면 194조 달러의 투자 기회가 생겨 느슨한 전환을 할 경우(약 119조 5000억 달러)보다 더 큰 시장이 열릴 것으로 추산된다”며 “기후테크, 제철·화학 탈탄소, 전력망과 미래 모빌리티 등에서 우리나라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반드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가 다음 정권에 탄소 감축 책임을 떠넘겼다’고 비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임기 연평균 온실가스 감축률이 1.99%인데 비해 차기 정부인 2027~2030년에는 이 비율이 9.29%로 올라간다는 게 그 근거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블룸버그ENF를 보면 녹색 기술이 2020년대 후반에 급격히 고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며 “이번 정부에 탄소 중립과 관련해 상당히 많은 연구개발(R&D) 프로젝트가 시작될 텐데 그 열매는 다음 정부가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핵심 키 격인 녹색 기술이 상용화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각의 주장은 정치 공세일 뿐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