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유럽에서 세계 최초로 통과되면서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국내 디지털자산기본법은 해외와 달리 산업 진흥보다 투자자보호와 규제에 무게를 둔 탓에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럽연합(EU)은 20일(현지시간) 최종 표결을 통해 가상자산 규제 법안 ‘미카(MiCA)’를 통과시키면서 미카법은 세계 주요국이 단독으로 발의한 최초의 가상자산 법안으로 자리잡았다. 미카는 18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 하반기에 시행된다.
미카는 가상자산의 종류별로 차별화된 규제를 적용해 규제와 산업 진흥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카는 가상자산을 △토큰증권(ST) △유틸리티토큰 △자산준거토큰 △전자화폐토큰으로 분류해 각각 다른 규정을 적용했다. 또 토큰과 스테이블코인 발행 등 가상통화공개(ICO)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가상자산 발행 지침을 체계적으로 명시했다. 권오훈 차앤권 변호사는 “미카는 가상자산의 발행을 구체적으로 다룬 동시에 현실적으로 가능하도록 접근했다”고 설명했다. 박성준 동국대학교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미카법은 산업 규제와 진흥을 균형적으로 담았다”며 “산업이 성장하려면 규제와 진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들은 블록체인 산업 활성화를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마련 중이다. 일찍이 가상자산 규제에 나선 일본은 지난해 7월 웹 3.0 전담 조직 ‘웹 3.0 정책추진실’을 신설했다. 정부 차원에서 산업 여건을 개선하고 가상자산 신생기업의 법인세를 면제하는 등 웹 3.0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려는 의도다. 홍콩은 개인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하기 위해 오는 6월 가상자산사업자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한다. 또 웹 3.0 생태계 개발을 위해 5000만 홍콩달러(약 84억 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며 산업 부흥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두바이는 지난해 3월 가상자산 산업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가상자산규제법’을 발표했다. 두바이 월드트레이드센터 프리존(DWTCA)은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와 가상자산 글로벌 허브 구축을 위한 협약을, 금융 당국과는 프리존 내의 가상자산 금융 활동을 지원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세계 각국의 산업 진흥 정책과 더불어 지난해 얼어붙었던 가상자산 시장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비트코인(BTC) 가격은 이달 3만 달러를 돌파해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은행 파산 등 전통 금융의 위기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완화 기대감에 자금이 가상자산으로 몰린 탓이다. 이더리움(ETH)도 지난 12일 스테이킹(예치)된 가상자산의 출금을 허용하는 샤펠라 업그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한 달 만에 가격이 54% 상승했다. 거시 경제적 요소와 글로벌 금융 당국의 기조가 맞물리면서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시장의 심리가 커진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 시장은 여전히 침울하다. 국내 일부 거래소가 ‘김치코인(국내 또는 내국인이 발행하고 대부분이 국내에서 거래되는 코인) 상장 뒷돈’을 받은 혐의로 수사가 진행되자 김치코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주요 가상자산의 반등에도 업계는 활력을 잃었다. 또 김치코인 중 하나인 ‘퓨리에버 코인’이 최근 강납역 납치·살해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시세조종 의혹을 받으면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테라·루나 사태부터 시장에 악재가 겹치면서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의 지난해 실적은 전년 대비 저조하거나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사건이 끊이지 않자 당국은 산업 진흥보다 규제에 방점을 둔 모습이다. 국회는 이달 디지털자산기본법을 통과시킬 예정이지만 법안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항만 있을 뿐 블록체인 업계의 진흥에 관한 규정은 논의 대상에서 빠졌다. 투자자의 피해가 계속되자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책부터 마련하겠다는 심산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산업 선점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내 업계가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 변호사는 “현재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산업 진흥을 위한 규정들이 빠져있다”며 “블록체인 산업에 뒤처져있던 유럽이 발빠르게 법안을 마련하면서 우리나라도 산업 진흥을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는 ICO가 불가능하고 가상자산 발행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며 “법안이 계속 규제 일변도로 간다면 국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ICO를 진행하고 다시 국내 거래소에서 상장시키는 등 절차상의 비효율이 발생하는 가운데 종합적인 접근 없이 투자자 보호에만 집중하면 글로벌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는 분석이다. 박 센터장도 “산업 진흥과 규제가 조화롭게 규정된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