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미술관에 오는 이유는) 모네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모네라는 브랜드를 경험하기 위해서일까요?”
최근 MZ세대는 미술 시장의 주요 소비자다. 유명 작가의 전시회가 열리면 오픈런을 감수하고라도 전시를 관람하고 이를 사진으로 남긴다. 사진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인증된다. 이로써 소비자는 ‘미술관에 다녀왔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이같은 관람 방식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작가나 전시를 기획한 미술관은 ‘관람객이 작품 속 세상을 어느 정도나 알고 있나’에 의문을 품는다. 사실 19~20세기 작가의 작품 중 상당수는 2023년의 소비자들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젠더, 인종, 평화, 환경 등에 대해 현재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당시의 작품 경험을 그러한 이슈에 가장 민감한 MZ세대가 ‘인증’하는 현상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
누구나 궁금했지만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한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후(Who)’가 나섰다. ‘후’, 즉 ‘후 더 베어(Who The Bear)’는 ‘후니버스(Whoniberse)’라는 가상의 세계 속 미술관 ‘후겐하임(Whogenheim)’에 사는 곰 캐릭터다. ‘후’는 주로 명작을 탐구하고 각색한다. 앤디 워홀의 명작 ‘캠벨 수프 통조림’ 통 속에 풍덩 빠져보거나, 피카소의 화풍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꿔 보기도 한다.
‘후’를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일본계 영국 작가 사이먼 후지와라. 그는 이미 2021년 밀라노 프라다 재단에서 열린 개인전 ‘후 더 베어’를 첫 선 보인 후 세계 미술 시장을 누비며 러브콜을 받는 스타 작가다.
‘후’는 코로나19 팬데믹 봉쇄 이후 태어났다.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정신나간 시대가 콜라주와 같다”라며 ’후니버스'의 의미를 설명했다. 작가에 따르면 코로나19 시기 우리는 갑자기 집 안에 갇히고 마스크를 써야 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의 세계를 살았다.
그는 “오늘날의 세계는 기후위기, 정체성 정치가 다툼을 일으키고, 모든 것이 무너져 있는 복잡한 세계인 데 정치인들은 마치 만화캐릭터처럼 단순하게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답을 제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순한 답을 제공하려는 이유는 우리가 이 문제를 더이상 처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라며 만화와 같은 단순한 캐릭터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40여 점의 작품은 대부분 작가의 신작이다. 1층에 설치된 영상에서 후는 자신의 정체성을 궁금해 한다.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질문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는 모습이 SNS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에 의해서 정의 내리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았다.
전시 기간 갤러리 현대는 어른을 위한 삼청동의 ‘작은 디즈니’가 된다. 지하 1층부터 시작되는 ‘후지엄’은 작품의 액자 틀과 바닥, 벽까지 노랑, 분홍, 파랑으로 이어지는 작가가 직접 기획한 정확히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감수성)한 장소다. 후는 유명 작가를 좋아한다. 피카소, 마티스 등 ‘인스타그래머블’한 작가들 말이다.
후의 꿈은 미키마우스와 같은 궁극의 이미지가 되는 것. 갤러리현대는 후의 꿈을 위해 기꺼이 전시관 밖 공간까지 내주며 후니버스를 조성한다. 가방, 모자, 어린이를 위한 책 등을 판매하는 일종의 굿즈숍, ‘후티크(Whotique)’에서는 유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상품을 판매한다. 전시는 5월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