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佛 프라이팬 시위





연금 수령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2년 늦추고 보험료 납부 기간을 1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연금개혁법 공포에 반발하는 프랑스 국민들의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번 연금 개혁 반대 시위는 ‘프라이팬 시위’로 불리고 있다. 프라이팬과 냄비 같은 주방용품들을 대거 동원한 시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주방용품이 등장한 시위의 원조 격인 나라다. 프랑스 시민들은 1832년 루이 필리프 1세의 경제 실정에 항의해 프라이팬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그 뒤 이런 방식의 시위는 중남미로 확산됐다. 1964년 주앙 굴라르 브라질 대통령의 정책 실패로 식량 부족이 심화되자 주부들이 냄비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1971년 칠레에서는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에 대한 항의 표시로 여성 시위대가 냄비 행진을 벌였다.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고 들어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대통령 퇴진 시위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한 반대 시위 때도 냄비가 등장했다. 중남미 반정부 투쟁의 상징이 된 냄비 시위는 스페인어로 냄비를 뜻하는 카세롤라(cacerola)와 두드린다는 뜻의 아소(azo)가 합쳐져 ‘카세롤라소(cacerolazo)’라고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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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시위에 주방용품이 자주 사용된다면 환경 시위에는 신발이 주로 등장한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테러 위험으로 시위 금지령에 내려진 데 대한 항의 표시로 환경운동가들이 빈 신발을 전시하는 시위를 벌였다. 2020년 영국 런던에서도 친환경 경제회복을 요구하면서 트래펄가 광장에 1500여 개의 신발을 늘어놓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표출하는 것은 민주국가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냄비를 두드리는 것으로는 프랑스를 전진하게 할 수는 없다”며 연금 개혁의 뜻을 굽히지 않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일갈도 새겨들어야 한다.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시위는 나라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능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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