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밤 11시45분. 강남 역삼동 주거지 한복판에서 여성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남성 2명은 “살려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는 여성을 강제로 차량에 태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자는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피의자 3명이 검거됐고 배후엔 재력가 부부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수민 형사3부장)은 28일 이른바 '강남·납치 살해' 사건의 주범 이경우(36), 황대한(36), 연지호(30)와 이들과 범행을 공모한 유상원·황은희 부부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2년 6개월 전께인 2020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업가 부부인 유상원과 황은희는 피해자 A씨의 말을 듣고 투자자를 모집, 31억원을 '퓨리에버코인'에 투자했다.
그런데 코인 값이 폭락하자 A씨는 "유상원 부부가 시세조종을 한 것"이라며 투자자들을 선동, 유상원 부부 집에 난입하게 해 4억원을 갈취하도록 한다. 또 투자자들이 유상원 부부를 형사고소하도록 부추겼다고 한다.
이후 투자자 중 한명이었던 이경우는 유상원 부부에게 피해자가 선동의 주범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사과, 복수심을 갖게 된 유상원 부부와 손을 잡고 살인 모의를 하게 된다.
검찰이 확보한 범행 차량 블랙박스 영상 829개와 이들의 휴대전화 음성녹음과 통화 내용 등에는 이후 납치가 벌어진 정황이 자세히 담겼다.
이경우의 지시를 받고 납치를 실행한 황대한과 연지호는 자신들의 범행이 폐쇄회로(CC)TV에 찍힐 것을 걱정하면서도, 피해자 A씨와 연결고리가 없다는 점에서 수사망을 피할 수 있다고 여긴 것으로 파악됐다.
블랙박스에는 황대한이 연지호에게 "일단 우린 연관성이 없다고 했잖아. 우린 용의선상에서 배제야. 수사 기간도 오래 걸리고"라고 말한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우리가 철두철미하지 못해 보이지?", "어떻게 죽이겠다는 거냐" 등 대화를 나눈 것으로도 알려졌다.
범행 당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황대한과 이경우가 10차례 이상 통화하며 범행을 논의한 사실도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이날 저녁 황대한이 연지호와 A씨를 미행했고, 이경우에게 전화로 "(A씨가) 가방을 들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 움직일지 몰라서…앞에서 끌고 와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역시 계획 범죄임을 보여주는 정황이라고 검찰은 판단했다.
황대한과 연지호는 A씨 납치 후에도 곧장 이경우에게 연락했고, 이경우는 그 즉시 유씨 부부에게 연락해 범행 상황을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유상원·황은희 부부도 범행을 보고받고 가담한 점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부부는 이경우에게 착수금 7000만원을 준 것 등 일부 사실관계만 인정하고 혐의는 전면 부인하며 수사와 재판에 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확보한 황은희의 구치소 작성 메모에는 7000만원의 성격에 대해 어떻게 진술할지에 대한 고민과 투자 실패에 대한 원망 등이 적혀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검사가 추궁하더라도 절대 굴복해선 안 된다'는 다짐과 변호사 상의 없이는 검찰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적혔다.
검찰은 범행 이후 이들이 용인의 한 호텔에서 A씨의 휴대전화로 가상화폐거래소에 접속해 가상화폐를 빼돌리려 했지만, 로그인에 실패해 미수에 그친 사실도 새롭게 파악했다.
3인조는 A씨를 납치한 뒤 마취제로 사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주사했는데, 이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A씨로부터 정확한 거래소 비밀번호를 받아내는 데 실패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이들이 시신을 대전의 한 야산에 암매장할 때에는 A씨가 이미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이경우가 '뒷처리'를 지시하자 황대한이 A씨에게 두 차례 더 주사를 놓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A씨의 휴대전화는 유상원·황은희 부부가 이튿날 부산 앞바다에 버려 확보하지 못했다.
검찰은 이런 수사 결과에 따라 이경우 등 3인조와 부부에게는 강도살인·강도예비 혐의를 적용했다. 3인조에는 시체유기 및 마약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또 유상원과 이경우가 A씨의 가상화폐 거래소 접속을 시도한 데 대해서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추가했다.
A씨의 동선을 파악해 범행에 조력한 황대한의 지인 이모씨와,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병원에서 살인에 쓰인 향정신성의약품을 빼돌려 3인조에 제공한 이경우의 부인 허모 씨는 각각 강도예비, 강도방조 혐의 등으로 재판에 함께 넘겨졌다.
검찰은 "보완 수사를 담당한 검사가 직접 공판에 관여해 빈틈없는 공소 유지를 해 피고인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중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