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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이광재 “與野, 각자 골대·볼 갖고 축구…고래 싸움에 '새우 등' 안 터지려면 스스로 고래 돼야”

◆‘고래국가론’ 주창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연금·노동·인구·기후·산업·교육 등 국가현안 첩첩산중

대통령실 비전·여야 대화 부족…국정난맥·‘행복 후진국’

보수·진보, 정권 바뀔 때마다 기존 입장 뒤집는 고질병

여야정, ‘고래국가’ 될 수 있도록 새판짜기 적극 나서야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적 현안이 첩첩산중인데 정치권이 서로 다른 골대와 공을 갖고 축구를 하는 형국이라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회이광재 국회 사무총장이 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가적 현안이 첩첩산중인데 정치권이 서로 다른 골대와 공을 갖고 축구를 하는 형국이라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 제공=국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는데 국제 질서 급변 속에 우리 스스로 ‘고래 국가’로 거듭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국가적 현안은 첩첩산중인데 대통령실은 야당과 대화하지 않고 정치권은 서로 다른 골대와 공을 갖고 축구를 하고 있으니 참 안타깝죠. 여야가 뒤바뀌면 기존 입장도 뒤집는 고질병도 여전하고요.”



3선 국회의원과 강원도지사 등을 지낸 이광재(사진) 국회 사무총장은 1일 국회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거꾸로 추락하느냐 갈림길에 서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미중 패권 전쟁에 따른 신냉전으로의 대전환기에 보수와 진보가 싸울 때 싸우더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원팀’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최근 한미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염려하는 야당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되 결국 안보와 국익을 위해 초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날 ‘고래국가론’을 거듭 피력한 이 총장은 “첨단산업 육성, 세계 질서 대응, 인구 절벽 극복, 연금 개혁, 교육 혁신, 노동 개혁, 기후 위기 해결, 지방 소멸 대처라는 8대 국가 핵심 과제를 잘 풀어가면서 대대적인 국가 대개조의 길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질서가 급변하는데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 야당에서 국가 과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실과 야당의 대화가 없어 핵심 국가 과제에 대해 정리가 안 되는 답답한 상황이다. 어떻게 국가 생존과 발전을 도모할지 걱정이 많다.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새판 짜기를 해야 한다.

-국정 운영과 정치에서 꼬인 실타래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걱정이다. 경제는 선진국인데 국민 행복은 후진국이다. 국가는 성공했는데 국민의 삶은 위기에 처했다.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이 지금 정점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은 강하지만 정치 리더십은 약하다. 지금 인구 절벽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보육·교육·주거 문제 등에서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노후 불안이 사라지도록 연금 개혁을 해내야 한다. 일자리와 소득을 통해 예측 가능한 삶, 안정된 인생 설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가 풀어야 할 숙제들이 아주 많다.



-지금은 ‘정치의 실종 시대’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그렇다. 현재 법률의 96%를 국회의원들이 발의한다. 국회의 시대가 온 것이다. 국회에서 법률과 예산이 막히면 국가 정책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의원들이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려고 한다. 국회와 민관의 싱크탱크가 함께 국가 현안 토론회를 연속으로 진행하고 있다.

-정치와 국회를 정상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은 권력과 정치의 결별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한 지 1년이 됐는데 국가의 목표, 국가의 핵심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대통령과 야당의 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여야 대화도 잘 이뤄지고 있지 않다. 우리 정치의 위기는 청사진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지 비전·정책·사람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준비가 너무 부족한 상황에서 집권한다. 집권하고 나면 야당 때 주장을 다 잊어버린다. 여야 대화는 어느새 실종된다. 여야가 각자의 골대를 세우고 서로 다른 볼을 차서 자기만의 점수를 계산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이 원하는 것을 결정하고 실행하도록 정치와 권력이 함께 가야 한다.

-먼저 연금 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까.

△보험료율을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낮추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금 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연기금이 주식 투자를 늘렸지만 여전히 우리 증시는 업그레이드되지 못하고 있다. 국부펀드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한국투자공사(KIC)도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조금 있으면 퇴직연금이 국민연금보다 많아질 텐데 현재 보통예금 정도의 수익률에 그친다. 싱가포르의 테마섹과 싱가포르투자청(GIC)처럼 적극적으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도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에너지 믹스에 대한 국가 정책을 빠른 시일 내 확정지어야 한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폭우 등 재난재해가 갈수록 커지면서 신림동 반지하 세 모녀 사망 사고와 같은 비극이 생긴다. 이제는 도시계획을 다시 해야 한다. 치산치수 대책도 마찬가지다. 식량 생산은 더 줄어들게 돼 식량안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말라리아 같은 질병도 생기는데 감염병 대책도 다시 세워야 한다. 기후위기 극복은 대통령실의 핵심 과제다.

-인구 절벽은 너무나 심각한 문제인데.

△2006년부터 20개 부처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정책을 펴면서 280조 원을 썼다. 2021년부터 시행 중인 4차 기본계획의 세부 과제만 236개에 달한다. 왜 세계 최하위 출산 국가가 됐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청년들이 ‘나도 결혼하고 아기 낳아야지’ 하는 생각을 갖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공립 어린이집을 많이 지어야 하는데 국유지가 다른 부처 재산이면 사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방송인 ‘사유리’처럼 결혼하지 않고도 아기를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적극적 이민정책도 필요하다. 독일의 시인·극작가·정치가·과학자인 괴테는 ‘독일인은 독일어를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무엇보다 교육 혁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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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도 교육, 둘째도 교육, 셋째도 교육이다. 교육 개혁이 정말 중요하다. 인공지능(AI) 시대 공교육을 강화해 사교육비 부담을 없앨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에스토니아의 초대 대통령과 심도 있는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디지털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교육 개혁에 매진했다고 하더라. 컴퓨터 교육과 수학을 강화하고 언어를 3개 이상 가르쳤다고 한다. 우리는 AI를 키운다면서 코딩이나 수학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핵심 인재 한 명이 10만~2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 아닌가. 사교육비는 늘어나는데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성적은 떨어지고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포함해 교육재정을 혁신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첨단 전략산업 육성이 시급하다.

△국력은 경제력에서 나오고 이는 결국 과학기술력이 좌우한다. 반도체가 경제이자 안보이고 외교가 되는 현실을 보라. 결국 첨단 기술만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 이 세상에 없는 기술을 개발하면 세계의 주인공이 된다.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은 지 16년이 됐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약 50억 명이 깨어 있는 시간의 3분의 1 가까이 스마트폰 등 온라인을 사용한다. 기술은 금융과 만나야 현실이 된다. 기술·신용보증기금, 산업은행 등 정책 자금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벤처·스타트업이 글로벌 역량을 키울 수 있게 지원하고 미국처럼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엑시트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대기업이 벤처·스타트업의 기술과 인재를 탈취하지 않고 M&A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특히 사활을 걸고 반도체, 배터리, 첨단 바이오, 양자, 우주 등 국가 전략 기술을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 테슬라나 포드 등 다수의 미국 기업도 중국과 협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역시 첨단 분야가 아닌 미들테크 분야에서는 중국과 협력해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지방 소멸 우려에 대한 대처 방안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인 관중은 비단 클러스터처럼 상인이 모여 도시를 이뤄야 부를 창출한다고 봤다. 중세 유럽의 길드와 우리 안성유기 단지 등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특정 분야에 강한 클러스터 도시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지방 소멸을 막으려면 더욱 과감하게 기업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강원도 원주만 해도 기업 도시와 혁신 도시가 다 있지만 정작 ‘기업과 혁신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교육과 의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족 도시가 되기 힘들다. 주민과 기업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는 ‘기업 도시 2.0’을 추진할 때다. 나아가 대학 도시를 만들어 대학이 지방의 혁신 거점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KAIST와 충남대를 합치면 100만평가량인데 수십층짜리 빌딩을 지어 벤처·스타트업 등 기업이 들어가게 해야 한다. 숙소도 지어 청년들의 집 문제도 해결해줘야 한다. 우리 국립대 전체 땅이 4600만평가량 된다. 지방자치단체에 도시계획 자율권을 부여해 대학에 기업이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노동 개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떨어지는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플랫폼 노동에 참여한 사람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노조를 못 만드는 현실을 감안해 공제회를 만들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쿠팡이나 배달의민족에서 플랫폼을 키우는 데 역할을 한 가게 주인과 라이더가 기업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면 좋겠다.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플랫폼 근로자에게 급여로 연봉의 15%까지 주식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이제는 경제 선진국으로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텐데.

△보수와 진보가 피아를 구분하면서 옳고 그름, 선과 악의 문제로 서로를 본 측면이 있다. 그 결과 ‘경제 선진국, 행복 후진국’이 됐다. 이제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목표로 삼고 정치인을 평가할 때 국민의 7대 행복 지표를 봐야 한다. 일자리, 소득, 주거, 교육과 보육, 건강과 의료, 노후 연금, 문화 혜택으로 성적표를 매겨야 한다. 물론 국가의 지속 성장도 중요한 지표다. 국내총생산(GDP)과 더불어 지역내총생산(GRDP)·잠재성장률·생산성을 봐야 한다. 기업 임직원은 매년 성과에 따라 평가받고 스포츠 선수도 성적에 따라 연봉이 책정된다. 이제 정치도 난투극에서 기록 경기로 바꿀 때다. 세계 최초로 정치인 평가 제도를 도입했으면 한다.

-국가 예산편성 방식과 관료 시스템의 혁신이 중요하다.

△제로베이스 예산이 필요하다. 예산 기획과 편성의 관습을 깨고 밑그림을 다시 그려보자는 것이다. 1982년 1인당 국민소득 2000 달러였을 때 제로베이스 예산을 한 경험이 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민소득 1만 4000달러였을 때도 했다. 지금은 국민소득 3만 달러대(지난해 3만 2661달러) 시대다. 예산편성도 국민 수준과 국력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

◆He is…

1965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원주고를 나왔다. 연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해 법학과 학사로 졸업했다. 1988년 초선 국회의원인 노무현의 보좌진이 돼 정계에 입문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17·18·21대 국회의원, 강원도지사를 역임했다. 21대 국회 전반기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7월 국회 사무총장으로 임명됐다.

고광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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