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는 보건의료인들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야당의 강행 처리를 규탄했다.
의료직역 13개 단체가 참여하는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간호법·면허박탈법 강행처리 더불어민주당 규탄대회'를 열었다. 주최 측이 추산한 서울 집회 참여 규모는 3000여 명이다. 이들은 '민주당 심판', '간호법 폐기' 등의 문구가 적힌 빨간 펫말을 들고 "간호사만 특혜를 주는 간호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은 의료법에 포함된 간호사에 대한 규정을 떼어내 간호사의 업무범위, 체계 등에 관한 단독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간호법과 함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 받아 면허가 취소된 후 재교부 받았음에도 또다시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을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하고 10년간 재교부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연대에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를 비롯해 대한방사선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대한응급구조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한국노인복지중앙회·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 의료직역 13개 단체가 참여한다. 이날 현장에서는 각 단체 회장단이 올라와 호소문과 결의문을 낭독했다.
◇ 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 등 “간호법 제정되면 소수 직역 영역 침범 우려"
9일째 단식 농성을 지속 중인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구급차 임시 환자이송 침대에 들린 채 집회에 참여해 "전 간호협회장이 공식석상에서 '간호조무사는 고졸이면 충분하다'고 발언하며 86만 간호조무사를 모독하고 능멸했다. 한국판 카스트제도인 간호조무사 학력제한이 폐지될 때까지 목숨 건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호조무사들은 간호법 제정안에서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격이 '고졸 학력'으로 제한되어 있는 데 대해 반감이 크다.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자격을 '특성화고 간호 관련 학과 졸업자', '학원의 간호조무사 교습과정 이수자'로 명시한 데서 차용한 것인데, 전문대만 졸업해도 간호조무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게 이들 단체의 요구다.
의협 등은 간호법이 별도로 마련되면 이후 시행령 등 하위 법령 개정 또는 추가적인 법 개정을 통해 의사 없이 간호사 ‘단독 개원’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동안 의료법에는 간호사는 '의사의 지도하에 진료의 보조를 할 수 있다'고 나와있었다. 반면 이번에 통과한 간호법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어, 향후 의료기관 밖에서 간호사가 의사 지도 없이 돌봄사업 등의 주도권을 가져가려는 포석이라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응급구조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 다른 직역들도 간호법이 자신들의 업무 영역을 침탈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대통령 거부권 행사 요구…17일 400만 회원 연대 총파업도 불사
이날 의료연대는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경기, 제주, 강원, 충북, 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 연가를 내거나 진료시간을 단축하는 등 부분파업을 진행하고, 오후 중 거리에 모여 규탄대회 후 가두행진을 벌였다. 간호조무사들은 서울 4000여 명을 포함해 전국 1만 여명이 연가 투쟁에 나섰고, 응급구조사들도 민간이송단의 20% 가량이 오후 연가를 내고 통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단체는 "결의문에서 "간호법은 '간호사특례법'이자 '보건의료 약소직역 생존권 박탈법'"이라고 주장하며 "민주당이 정부 중재안도 걷어차고 다수 의석을 앞세워 입법독주 폭거를 자행했다"고 비난했다. 오는 11일에는 규모를 더욱 키워 제2차 연가투쟁을 진행하겠다고,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17일 400만 회원이 참여하는 연대 총파업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총파업에는 대학병원 전공의(레지던트)와 의과대학 교수들도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간호협회가 주도하는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의료연대의 규탄대회에 앞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법은 직역간 역할 분담과 협력을 방해하려는 법이 아니다"라며 "총파업 운운하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겁박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보건복지부를 향해서도 "명확한 법적 사실에 근거해 갈등을 중재하기는 커녕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키고 있다"며 "간호법에 대한 마녀사냥과 말바꾸기를 중단하고 중립의무를 준수하라"고 날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