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시론]국가 경쟁력 가로막는 임금체불

이상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우리나라 임금 체불액은 지난해 1조 3472억 원에 달할 정도로 많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넓지 않다. 대부분의 임금 체불 피해자들은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라서 사회적으로 충분히 주목받지도 못했다.

임금 체불은 그 사회에서 노동을 얼마나 소중하게 받아들이는지 알 수 있는 척도다. 한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경시한다면 임금 체불의 관행을 근절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재생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 임금 체불은 기업 조직의 신뢰를 훼손하고 근로자들의 몰입을 가로막아 결국 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또 사회적으로 노동 관련 법률과 제도의 규범력을 약화시키며 사법 비용을 늘린다.



특히 임금 체불 사건의 처리는 전체 근로감독 업무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근로감독관들은 중대재해 예방, 근로시간 준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등과 같은 본연의 근로감독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다. 결국 이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근로자들에게 전가된다. 임금 체불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켜야 실질적인 근로감독이 이뤄지면서 근로 생활의 질이 개선되고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관련기사



정부는 지금까지 체불 청산을 위해 사후적인 진정 사건 수사에 치중했다. 하지만 형사처벌은 대부분 체불액에도 못 미치는 소액의 벌금형이어서 실효성이 없었다. 사업주는 임금 체불로 인한 이득과 그에 따른 손실을 비교해 임금 체불 실행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만약에 사업주가 임금 체불로 감수해야 하는 경제적 손실 수준을 높인다면 임금 체불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얼마 전 나온 정부 대책은 상습 체불을 일삼는 악성 사업주의 범위를 확대하고 이들에 대해 기존의 형사처벌 위주에서 경제적 제재 강화로 전환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미약한 형사처벌보다 경제적 손실을 실질적으로 높인다면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려는 동기를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자발적으로 임금 체불을 청산하려는 사업주의 노력을 촉진하기 위해 융자 요건도 대폭 완화했다. 체불 청산의 경제적 동기를 강화한 셈이다.

대책은 경제적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단초를 마련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오랫동안 이뤄진 상습 체불 관행을 일거에 근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책 집행의 결과를 모니터링하고 추가적인 보완 대책을 끈질기게 마련해야 한다.

이번 대책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앞으로는 임금 체불을 예방할 수 있는 체계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포괄임금제 악용으로 발생하는 무급 연장 근로를 발본색원하고, 소규모 사업장에서 임금 분쟁을 줄일 수 있도록 근로시간의 정확한 기록 관행을 점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임금 체불 발생의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들을 대상으로 사전 컨설팅과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섬세하게 마련해야 한다.

또 임금명세서 교부가 현장에서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지속적인 정책 개입으로 임금 체불 근절, 근로 생활 질 제고, 노사 신뢰 회복, 기업·국가의 경쟁력 제고라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돼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