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한국 완성차 업계의 가장 큰 전기차 수출 지역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005380)그룹은 현지 선호도가 높은 소형차종과 준중형급 차종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가 시행된 미국에서는 리스차 비중을 늘려 보조금 변수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유럽서 ‘소형’ 니로 EV 판매량 훨훨
8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기아(000270)의 올 1분기 유럽 전기차 판매량은 3만3831대로 집계됐다. 현대차가 1만5945대, 기아는 1만8886대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의 2배가 훨씬 넘는 판매량이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현대차가 8623대, 기아가 6080대로 총 1만4703대를 판매했다.
유럽에선 전기차 전환에 힘쓰는 완성차 업체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독일만 해도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이 앞다퉈 새로운 전기차종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한 바 있다.
기아 니로 EV가 유럽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분기 판매량이 8758대로 현대차그룹 전기차종 중 가장 많이 팔렸다. 기아 EV6(8574대), 현대차 코나 EV(7743대), 현대차 아이오닉5(6114대) 등이 뒤를 이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큰 차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유럽은 국내 기준으로 소형에 해당하는 B세그먼트나 준중형급인 C세그먼트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이 현지에 내세운 전용 전기차 2종(아이오닉5·EV6)은 모두 C세그먼트에 해당한다. 볼륨 차종(많이 팔리는 차종)으로 꼽히는 니로와 코나 EV는 B세그먼트로 분류된다. 실제로 유럽에서 판매량이 많은 니로 EV의 경우 미국에서는 2688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의 유럽 선전에는 대외 환경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코로나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공급망 차질, 인플레이션 등이 겹치면서 유럽 자동차 업계가 한동안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현대차그룹의 입지가 더욱 넓어졌다는 얘기다.
더구나 현대차그룹 전기차는 유럽 시장에서 잇따른 호평을 받고 있다. 기아의 첫 전용 전기차 EV6는 지난해 2월 한국 자동차 브랜드 사상 처음으로 ‘유럽 올해의 차’로 선정되는 등 유럽 각국의 자동차상과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현대차 아이오닉5도 전통적 자동차 강국인 영국, 독일 등에서 잇따라 ‘올해의 차’로 뽑혔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고성능 상품인 EV6 GT와 대형 플래그십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V9, 신형 코나 EV 등을 유럽 시장에 투입해 전동화 라인업을 강화하며 유럽 시장에서 입지를 넓힐 계획이다.
미국선 리스차 확대로 IRA 공백 메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선 리스차 비중을 빠르게 늘리는 식으로 현지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리스 차량은 IRA 상의 북미 최종 조립 요건 등을 충족하지 않아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한 차량 가운데 핵심 광물 및 배터리 요건을 충족한 전기차를 구매한 납세자를 대상으로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세액공제를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미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29일 발표한 추가 지침을 통해 리스 등 상업용 판매 차량에는 북미 현지 조립 등의 요건과 무관하게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정본부장(부사장)은 지난달 열린 올 1분기 경영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현대캐피탈 아메리카(HCA)를 이용해 리스 차량을 최대한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에 5%에 불과하던 리스 비율을 지난달 기준 35%까지 확대했고 미국에서의 전기차 판매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아직 미국에 전기차 전용 공장이 없어 IRA상 소외되고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 리스차 확대로 발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 부사장은 “IRA는 시장에서 관심이 많고, 전기차 판매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회사 차원에서 주요 경영 사안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도 “전기차 외에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제네시스 판매가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우려만큼 IRA의 영향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선 전반적으로 리스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자동차 정보사이트 에드먼즈 통계를 인용해 미국 시장의 전기차 신차 가운데 리스 비중이 지난해 12월 9.7%에서 지난 3월 34.3%로 24.6%포인트 증가했다고 밝혔다.
PIIE의 채드 바운 선임연구원은 리스 차량에 대한 IRA 보조금 결정에 대해 조 바이든 행정부가 ‘경제적 폭탄’이 될지도 모를 정책을 조용히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한국·일본 등에서 조립된 리스 차량이 갑자기 세제 혜택 대상이 됐다”면서 “소비자들이 전기차 리스를 통해 세제 혜택을 받기 시작하면 ‘북미 최종 조립’ 요건 등에 따른 제한이 상당히 약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