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반도체 강국 대만의 비결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

TSMC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60%

'불 꺼지지 않는 연구소'가 원동력

기업이 산학연 협력 생태계 이끌며

세계 최고 '반도체 강국'으로 키워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50여 년 전, 모든 동네에 불이 꺼진 깜깜한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 있었다. 우리나라 정부 출연 연구소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다.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하며 불을 밝혔던 연구실은 다른 수많은 정부 출연 연구소의 모태가 됐고 이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과학기술 혁신 국가로 성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대 변화에 따라 최근에는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연구소와 연구실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과학계에서 많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필자가 다녀온 대만 신주과학단지에 위치한 대만반도체연구소(TSRI)에서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벌어지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대만의 반도체 기술력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기업이 TSMC다. TSMC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부문 세계시장 점유율이 60%에 육박하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 기업이다. 바로 이 기술력이 대만의 외교 협상력을 높이고 있으며 그런 만큼 대만에 반도체는 지정학적 사활이 걸려 있는 국가 전략 분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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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반도체 기술력을 강화하기 위해 2019년 1월 국가 차원의 반도체 전문 연구기관인 TSRI를 출범시켰다. TSRI는 반도체 설계·제조 공정 등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와 함께 국가 반도체 인재 육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 주변 대학, 민간 기업, 특히 TSMC와 긴밀히 연계돼 대만의 반도체 기술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놀랍게도 TSRI는 밤이 돼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TSRI의 첨단 반도체 장비들이 24시간 개방돼 있기 때문이다. 낮에는 연구자들이 연구하고 저녁이 되면 정규직 기술원의 도움과 관리하에 반도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침까지 실험과 연습을 진행한다. 그리고 이렇게 실무 이론과 역량을 함께 키운 학생들은 졸업 후 TSMC 등 유수의 반도체 기업에 취직해 바로 실무에 투입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수의 장비가 투입돼야 하는 반도체 제조업의 특성상 TSRI에서 활용되고 있는 다양한 고가의 장비들은 대부분 TSMC에서 제공했다는 점이다. 민간 기업인 TSMC가 현재 작동되고 있는 산학연 협력 생태계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협력 시스템이 가능했던 것은 신주과학단지에 TSMC, 국립 칭화대, TSRI 등 기업·대학·연구기관이 밀집해 이곳으로 연구 인력, 학생, 기술, 예산이 집중되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단단하게 구축돼 있는 산학연 협력 생태계가 신주과학단지의 다양한 인적·물적·사회적 자원을 적절히 연결함으로써 오늘날 대만을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강국으로 키워내고 있고 그 중심에는 TSMC라는 세계적인 기업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산학연 협력은 지난 20~30년 동안 정부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외쳐온 화두였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상태다. 그동안 국가적 차원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반세기 만에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이 현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가 과학기술 주요 5개국(G5)에 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산학연 협력 체계는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 최근 반도체 등 핵심 전략기술 분야에서 인재난에 봉착해 있는 우리로서는 앞으로 기술별 특성을 고려한 협력 체계 구축, 즉 함께 달리기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대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로 협력 생태계를 이끌고 정부와 공공 연구소, 대학은 이를 적극 지원하는 상생 구조를 완성해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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