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한국판 노보노디스크 나오려면 '이것만 해라' 풍토 바꿔야" [미리보는 서울포럼2023]

[특별 좌담] 韓 '첨단바이오 시대 선도' 해법은

바이오헬스, AI·빅데이터와 융합되는 전환기 맞아

韓, 기술력만 갖추면 퍼스트무버 도약할 골든타임

세법 등 제도개선 뒷받침돼야 해외자본 유치 가능

주영석(윗줄 왼쪽부터)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지놈인사이트 대표), 고광본 본지 선임기자, 윤석진 KIST 원장, 이용훈 UNIST 총장, 박한수 지놈앤컴퍼니 대표(가운뎃줄 왼쪽부터), 류진협 바이오오케스트라 대표, 이상엽 KAIST 연구부총장, 남준 조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학교수, 왕규창(아랫줄 왼쪽부터)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 유석환 로킷헬스케어 회장,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장 등이 서울경제 온라인 특별좌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주영석(윗줄 왼쪽부터)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지놈인사이트 대표), 고광본 본지 선임기자, 윤석진 KIST 원장, 이용훈 UNIST 총장, 박한수 지놈앤컴퍼니 대표(가운뎃줄 왼쪽부터), 류진협 바이오오케스트라 대표, 이상엽 KAIST 연구부총장, 남준 조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학교수, 왕규창(아랫줄 왼쪽부터)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 유석환 로킷헬스케어 회장,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장 등이 서울경제 온라인 특별좌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회=고광본 선임기자(서울포럼 사무국장)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 규모가 그린·화이트 바이오를 제외하고도 약 2600조 원에 달하지만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걸맞은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인공지능(AI)·빅데이터·나노·로봇·바이오3D프린팅 등 융복합 기술이 적용되는 첨단바이오 시장에서는 선도자의 길을 열 수 있을까.

서울경제신문은 첨단바이오 시대를 선도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용훈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 왕규창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부총장(한국생물공학회장), 유석환 로킷헬스케어 회장, 남준 조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학교수, 주영석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지놈인사이트 대표), 류진협 바이오오케스트라 대표, 박한수 지놈앤컴퍼니 대표(GIST 교수),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장 겸 한국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과 온라인 특별 좌담회를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덴마크의 노보노디스크처럼 세계적인 바이오 회사가 탄생할 잠재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디지털 역량이 뛰어나고 연구력도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으며 기술 기반 벤처·스타트업이 늘어나는 점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봤다. 바이오헬스가 첨단기술과 융합되는 ‘전환기’인 것도 기회 요인으로 꼽았다. 글로벌 제약사가 장악한 기존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는 빠른 추격자에 그쳤지만 첨단바이오에서는 충분히 선도자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첨단바이오인가.

-첨단바이오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세포·유전자 치료제, 합성생물학, 백신·치료제, 뇌과학, 재생의료·인공장기, 디지털 치료제, 원격의료, 나노로봇, 혁신 영상·진단 기기, 마이크로바이옴, 원격의료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첨단바이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윤석진 원장=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은 주력 산업인 조선·반도체·전자 등의 분야에서 적게는 10%, 최대 50%까지 차지하면서 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기존 주력 산업은 성숙 단계에 접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레드오션으로 전락했다.

바이오·의약 시장의 경우 유전자·세포 치료제와 같은 신약 개발이 시장을 이끈 결과 연평균 8.4%씩 성장하는 블루오션이 됐다. 다만 대상 범위에 따라 통계치가 조금씩은 달라지지만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1%대에 불과하다. 그만큼 미개척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유석환 회장=지난 100년 동안 발생한 1만 2000개 이상의 질병을 대형 제약사들이 엄청난 돈을 들여 치료를 했다. 이제 남아있는 질병들은 만성적이거나 한 가지 약으로 고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첨단 바이오가 필요하다. AI, 디지털 헬스케어 등 융합을 통해 치료법을 만들어야 대응이 가능하다.

△류진협 대표=세계 첨단바이오 시장은 자동차 산업과 반도체 산업을 합친 것보다 큰 1800조 원 규모다.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시장이다.



◇'빠른 추격자' 한국, 지금이 기회

-첨단바이오가 반도체에 이어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시각에 공감한다. 문제는 반도체와 같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다. 한국은 기존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빠른 추격자 전략을 사용했지만 첨단바이오에서는 선도자가 될 수 있나.

△주영석 교수=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의료·바이오헬스가 디지털·빅데이터·AI와 융합되는 ‘전환기’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물질과 자본이 제일 중시되는 산업구조에서는 선도자가 되는 것이 무척 어려웠지만 지금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첨단바이오의 격변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윤석진 원장=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 바이오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심각한 의료 인력난에 허덕일 때 한국은 선제적 방역을 추진할 수 있는 인재 풀을 보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홍릉 바이오 클러스터에만 360여 개의 바이오 관련 스타트업이 있다. 이제는 첨단바이오 분야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고 세계 선도 연구 그룹과 잘 협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첨단바이오도 영역이 다양한데 한국은 어느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나.

△이용훈 총장=정보기술(IT) 기반의 첨단바이오가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IT 분야가 강하고 IT 기반 첨단바이오 분야는 세계적으로도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UNIST가 IT 분야와 바이오 분야의 융합을 위해 정보바이오융합대학을 설립하고 자연대학의 생명과학과를 정보바이오융합대학으로 옮기는 조치 등을 추진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이기원 학과장=아직 한국은 바이오헬스 분야에 식품이 들어가 있지 않지만 바이오 영역 중에서 식량을 대체하는 그린바이오 분야나 푸드테크 분야의 시장 규모는 크다. 대체식품이나 맞춤형 식품은 정밀 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바이오헬스의 핵심 분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특히 맞춤형 식품, 배양육 분야는 우리가 앞설 수 있다. 식물성 소재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제일 잘하고 제품력도 훨씬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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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바이오 시장도 결국 미국 등 기존 선도국이 주도권을 가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박한수 대표=첨단 바이오에서 선도자가 되려면 미국 등 글로벌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하다. 미국이 반도체, 배터리처럼 바이오도 자국에서 생산하라는 압박이 심해질 텐데 미국 시장을 빼놓고는 선도자가 되는 게 불가능하다.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을 개척하는 지놈앤컴퍼니가 미국 시장에 진출해 CDMO(위탁개발생산)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영석 교수=미국에서 보니 변화의 속도가 우리나라가 걸어간다면 미국에서는 말을 타고 가는 것과 같다. 그만큼 미국이 변화가 빠르다. 빅데이터·디지털과 바이오가 만나는 분야에서 연구가 매우 활발하고 산업도 이제 형성되기 시작했다. 액체 생검 등의 분야에서는 많은 이들이 뛰어들어 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질 정도로 미국이 주도권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에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관련 기술이 완전히 만들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먼저 첨단바이오의 활용을 광범위하게 할 수 있다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남준 조 석학교수=관건은 융합이다. 산학연의 융합 생태계를 갖추면 충분히 새로운 첨단바이오 시장을 일궈낼 수 있다. 정부의 리더십이 매우 중요하다.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R&D) 강화에 매진하고 산학연병의 공조 체계를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지난해부터 바이오헬스 투자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관련 벤처·스타트업이 R&D와 상업화에 애로를 겪는데 이 부분을 정부가 챙겨줬으면 한다.



-첨단바이오에서 벤치마킹할 만한 나라가 있을까.

△류진협 대표=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작은 덴마크에서도 노보노디스크·젠맵 등의 세계적인 기업이 나타났다. 노보노디스크는 시가총액이 300조 원이 넘으며 미국 MSD를 앞질렀다. 한국의 연구 수준은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했고 정보 접근성도 글로벌 강국에 뒤지지 않는다. 임상 개발 인력 역시 마찬가지다. 저희 회사도 모더나 창립 멤버로 임상 개발을 담당했던 최고 의학 책임자를 채용했다. 미국 등 글로벌 자본을 유치할 수 있도록 세법·상법 등 제도적인 변화가 뒷받침되면 덴마크처럼 글로벌 첨단바이오 회사가 한국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규제 완화·인재 양성 속도내야

-미국·유럽·이스라엘·싱가포르 등에 비해도 뒤지지 않을 만한 첨단바이오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유석환 회장=한국이 첨단 바이오의 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각 국가의 보험 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약의 가격을 낮춰서 보험이 적용되도록 만들어야 판매를 늘릴 수 있다. 결국 정부와 소비자뿐 아니라 보험사를 만족시키는 기업이 선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왕규창 원장=대학과 의료기관에서 바이오 분야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연구자가 개발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기초연구와 응용 연구의 균형, IT·기계·화학 등과의 융합 연구도 촉진할 필요가 있다.

△이용훈 총장=핵심은 결국 인재 양성이다. 혁신을 주도할 인재를 키워내야 바이오 혁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대학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 미국의 국립보건원(NIH)처럼 대학에서 배출한 인재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국가적인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

△윤석진 원장=그렇다. 원천 기술 개발과 창업이 매끄럽게 연결된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국가 차원의 지원 제도를 한 걸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스타트업의 스케일업화에 신경을 쓰고 예비 창업자에도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변 시세의 3배를 받아도 스타트업들이 입주를 위해 줄을 서는 미국 보스턴의 혁신 생태계를 우리도 구현할 수 있다.

△이상엽 부총장=첨단바이오의 세부 분야, 즉 AI 기반 신약개발과 약물·음식 작용 예측, 대사공학과 합성생물학에 의한 친환경 바이오 제조, 친환경 첨단 바이오 기반 농업 등에서 최우수 집단을 찾아 더욱 치고나갈 수 있도록 획기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또한 바이오헬스 창업 지원시스템의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 벤처캐피탈이나 투자기관이 기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긴 호흡으로 투자하면서 창업가에게 충분히 시간을 줘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은 정부 차원에서 바이오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우리도 정부의 더 많은 역할이 필요한 것 아닌가.

△남준 조 석학교수=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자 국내에서는 정부 차원의 바이오 분야 투자가 사실상 사라졌다. 반면 미국은 어떤 감염병이 닥쳐도 대응할 수 있는 약을 미리 개발하기 위해 2조 원을 산학연에 투자했다. 우리의 현실은 투자를 지속하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첨단 바이오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형성될 때 과감하게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학연병정이 뭉쳐 첨단 바이오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상엽 부총장=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정부가 결정해 생태계에 전달되도록 하는 톱다운 방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부가 주도한 사업을 보면 개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것에 그쳤다. 투자 자체도 N분의 1로 나누는 데 급급했다. 첨단바이오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행정부가 주도하는 투자 방식이 필요하다. 미국은 ‘담대한 목표’라는 이름을 붙여 대통령이 투자 계획을 발표하자 전 부처에서 일사불란하게 계획을 마련해 내놓았다.

△왕규창 원장=의료 부문을 독립적으로 관장할 사령탑이 필요하다.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의과학자 양성, 기초의학 정상화 등 장기 계획을 추진할 수 있다.

-기업에서는 국내에 바이오 관련 규제가 많아 외국과 비교해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많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주영석 교수=유전체 분석 기업 지놈인사이트를 운영해보니 한국은 ‘이것만 하라’는 분위기인 반면 미국은 ‘이것 빼고는 다 해봐’라는 기조였다. 자연스레 바이오 관련 산업이 형성되는 속도도 미국이 훨씬 빨랐다. 우리도 기술 활용을 광범위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류진협 대표=한국의 바이오 기술 수준은 준수하다. 하지만 바이오 산업을 지원할 제도적인 측면이 부족하다. 제도가 미흡하다 보니 기업이 기술을 개발한 경험도 부족해진다. 한국에서 글로벌 업체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첨단 바이오 분야의 선도자들이 어떤 제도를 마련하고 정책을 펴고 있는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박한수 대표=글로벌 시장은 물론이고 특히 미국의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국 생산을 유도하려는 압박이 심해질 텐데 미국 시장을 빼놓고 첨단 바이오 분야의 선도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 /정리=박진용·김지영·유창욱 기자


박진용 기자·김지영 기자·유창욱 기자·고광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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