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적 이유로 병원 밖에서 홀로 출산하고 영아를 버리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공식적으로 잡힌 영아 유기만 10년간 1200건에 육박한다. 한 베이비박스에는 14년간 2000명 넘는 갓 태어난 아이들이 버려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산모가 신원을 노출하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보호출산제’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2022년) 동안 영아 살해는 85건, 영아 유기는 1185건 발생했다. 특히 2015년 37건이었던 영아 유기는 2018년 178건으로 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영아 유기가 급증한 배경에는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법 개정으로 출생신고를 한 아동에 대해서만 입양이 가능해지면서 출생 사실을 숨기기 위해 미혼 부모들이 아이를 유기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현재까지 운영 중인 이종락 서울 주사랑공동체교회(이하 주사랑공동체) 목사는 “출생신고 의무화는 10대 미혼모들에게 출생신고를 강압적으로 하라는 것”이라며 “법 개정 이후 유기가 크게 증가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2009년 12월 서울 관악구에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후 올해 5월까지 총 2078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공동체에 인계됐다. 베이비박스는 부모가 아기를 박스에 넣으면 자동으로 벨이 울려 상주 직원이 인지하게 되고 그 즉시 직원이 나가 부모를 만나볼 수 있는 구조다. 이 목사는 “상담을 통해 최대한 원가정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설득하고 여의치 않으면 위탁 가정에 보내거나 입양을 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베이비박스를 찾은 97.2%의 부모가 상담을 받고 22%의 아이가 원가정으로 복귀했으며 13%가 출생신고 이후 입양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미혼모이거나 이혼 소송 등으로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영아가 입양되려면 일가 창립(성·본 창설)이 선행돼야 하는데 현재 베이비박스는 위기 영아 일시 보호소로 지정되지 않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지난해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인 65명은 출생신고 없이 시설로 보내지기도 했다. 출생신고가 늦어지면 입양에도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 주사랑공동체의 설명이다.
버려지는 영아와 미혼모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는 ‘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목사는 “미혼모를 대상으로 선(先)행정 후(後)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보호출산제를 도입하고 베이비박스에서도 1년가량 아이를 보호할 수 있도록 위기 영아 일시 보호소로 지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0년에는 국회에서 보호출산제도가 발의됐다. 하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여전히 계류하고 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태아의 생명권과 알 권리, 산모의 건강권과 자기 결정권을 조화롭게 보호하자는 취지로 발의했다”며 “보호 출산이 비록 최선은 아니지만 보호 출산이 가능해지면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지키고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영아 유기를 방지하기 위해 위기 임산부가 상담을 거쳐 의료기관에서 익명으로 출산한 경우 해당 아동을 지자체에서 보호하는 보호출산제를 2026년 수립되는 국내 입양 활성화 기본 계획에 포함시킨다는 방침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호출산제가 법제화돼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익명으로 소방서에 영아를 맡기면 영아가 입양될 수 있도록 하는 ‘세이프헤븐법’을 모든 주에서 실행하고 있다.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프랑스는 1941년 익명출산제도를 도입해 매년 약 600명의 영아를 보호하고 있다. 독일은 비슷한 법을 ‘신뢰출산제도’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호출산제가 영아가 향후 부모에 대해 알 권리를 보장하지 못해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의 한 관계자는 “보호출산제는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와 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한다”며 “아동이 가능한 한 원가정에서 부모에게 양육 받을 수 있도록 위기 임신 출산에 대한 공적 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