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국익 최우선 ‘정교한 외교’ 절실…‘전략적 명료성’으로 中에 할 말 해야” [청론직설]

◆심윤조 국민대 특임교수(전 외교부 차관보)

文정권, 중국 영향권 편입·북한 중시의 시대착오적 외교

對中관계 모호성 탈피, 당당히 재정립하고 경제 협력을

尹정부 외교 대전환으로 한미일의 세계 전략 협의 ‘서곡’

가치동맹 강화 큰틀 속 다자협의체로 외교 전선 넓혀야

외교부 차관보를 지낸 심윤조 국민대 특임교수가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벗어나 인권·시장경제·국제법 등에 대해 우리가 원칙을 갖고 중국에 당당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외교부 차관보를 지낸 심윤조 국민대 특임교수가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벗어나 인권·시장경제·국제법 등에 대해 우리가 원칙을 갖고 중국에 당당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신냉전·블록화의 가속화로 국제 정세가 격변하고 있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와 한미일 공조 복원을 통한 가치 동맹 강화,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 등을 위한 정교한 외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외교부 차관보와 국회의원을 지낸 심윤조 국민대 특임교수는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는 한국을 중국의 영향권 아래로 스스로 밀어넣고 북한 중시의 시대착오적 외교를 했다”며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나 ‘전략적 명료성’으로 인권 등에 대해 중국에 당당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 뒤 한국 외교의 대전환이 시작됐다”면서 “한일·한미일 연쇄 정상회담으로 한미일 3국이 세계 전략을 함께 협의하고 추진하는 과정의 서곡이 완성됐다”고 평가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데.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세계 정세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명운이 갈린다. 격변기의 외교는 관성적 자세에서 탈피해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지금은 미중 전략 경쟁으로 대변되는 신냉전 또는 유사 냉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계기로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림)’를 탈피해 ‘대국굴기’를 지향하면서 미중 갈등이 야기됐다. 이때 문재인 정부는 한국을 중국의 영향권 아래로 스스로 밀어넣고 북한 중시의 시대착오적 외교를 했다. 더욱이 반일(反日)을 정치의 동력으로 삼는 역사 퇴행적 외교 행보를 보였다. 이 시기에 일본은 미중 경쟁이라는 국제 정세에 부합하는 세계 전략을 구상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이 그것이다. 일본의 역할 확대 움직임은 한국의 고립주의적 양상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한일 정상의 연이은 회담으로 한일 셔틀외교가 복원됐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외교 방향을 대전환하는 조치를 발 빠르게 취했다. 정부 출범 열흘 만에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미 양국이 동맹으로서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담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3국 정상이 만나 3국 공조를 복원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한일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는 우리의 국제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는 데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제징용 문제 해결이 가장 큰 과제였다. 윤석열 정부는 그 해법으로 제3자 대위변제 방안을 공표했다. 이는 한일청구권협정 및 대법원 판결 모두와 정합성을 갖춘 유일한 방안이어서 현실적으로 최선의 방책으로 평가된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가진 한미일 정상 회동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일 정상을 워싱턴에 초청했는데.

△윤 대통령의 4월 미국 국빈 방문은 한국의 외교 방향 대전환에 대해 미국이 환영 의사를 공식 표현한 최상의 예우였다. 5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전격적인 한국 방문은 윤 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호응인 동시에 한일 및 한미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의 연쇄적 효과에 해당한다. 뒤이은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의 한미일 3국 정상 회동은 앞으로 세 나라가 세계 전략을 함께 협의하고 추진하는 과정의 ‘서곡’이 완성된 장면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3자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안한 것은 한미일 정상회담의 제도화를 의미한다. 글로벌 중추 국가로 부상하는 한국의 국제적 지위와 역할이 대폭 향상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야권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 일방적 양보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야권의 비판에는 아무런 대안도 없다. 이전 정부와 같이 반일을 정치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우리 외교의 대전환 과정이 시작됐기 때문에 앞으로 커다란 변화와 실질적 성과가 이어질 것이다. 이미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몇 가지 성과를 거뒀다. 히로시마 위령비 참배,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 파견 등은 정상회담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 조치가 이뤄지고 있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도 복원됐다. 무엇보다 서로를 보는 한일 양국 국민의 시각이 우호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관계 개선의 실질적 효과를 체감하게 되면 국민의 이해와 지지도 상승할 것이다.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한 향후 과제는.

△한일간 전략적 협력은 한미일 3국 공조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이에 더해 미중 경쟁 시대에 한일이 공동의 전략적 이익을 함께 모색하는 계기를 부여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문제나 중국의 부당한 압력 행사 등에 한일 양국이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공통의 국가 이익 증대를 도모할 수 있다. 전략적 협력을 제도화하는 것은 협력의 불가역성을 보장하는 데 중요하다. 재무장관 회담뿐 아니라 외무·국방장관 회담(2+2)을 시작하고 양국 기업 간 제3국 공동 진출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 부문의 활발한 교류도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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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국민 상호 간 신뢰 및 호감 증대를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인적·문화적 교류가 대폭 증가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관광객을 위한 편의 제공, 젊은 세대 간 이해 증진을 위한 유학생 교류 사업, 취업 증대 등 관계 개선의 혜택을 실생활에서 직접 느낄 수 있는 조치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지도자의 결단이 현실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관료뿐 아니라 정계·재계·학계 및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부문 등에서 전방위적 교류와 협력이 펼쳐져야 한다.

-한미 양국은 4월 정상회담에서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4월에 한미 정상은 북한 핵 위협에 대한 대응 강화 방안으로 기존의 확장억제 정책에 더해 핵협의그룹(NCG)을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전략자산이 상시 배치에 준하는 형태로 한반도에 전개됨으로써 북한의 핵 위협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서는 북핵 대응을 위해 보다 실질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NCG와는 별도로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허용 문제는 미국과 협의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의 고유 권리다. 그렇지만 한미 원자력협정에 의해 한국의 권리가 통제되고 있다. 2015년 이 협정이 개정되면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미국의 ‘사전 동의’가 ‘협의’로 완화된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계속적인 ‘협의’를 통해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우리의 핵 잠재력 확보뿐 아니라 핵연료 확보라는 산업적 필요를 위해서도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를 시행할 단계가 됐다. 우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철저한 사찰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우려를 충분히 불식시킬 수 있다.



-중국이 한국 정부를 겨냥해 엄포를 계속하고 있다.

△중국은 한미일 3국 공조에서 한국을 가장 약한 고리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 압박을 가하고 줄세우기를 강요하려고 한다. 문재인 정권의 대중 저자세 외교 탓이 크다. 이제는 기존의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나 ‘전략적 명료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인권, 시장경제, 국제법 준수 등에 대해 우리가 원칙을 갖고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에 중국이 계속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등 할 말을 해야 한다. 이로 인해 중국과 불편한 입장에 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과거와 같이 한국을 한미일 공조의 약한 고리로 여기거나 중국의 영향력 하에 둘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여전히 중국은 우리의 주요 교역국이라는 점이 딜레마인 것 같다.

△대중 관계가 앞으로 우리 외교의 난제가 될 것이다. 미중 대립 시대라고 해서 우리가 최전방에 나서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큰 틀에서 미일 등 서방 세계와 보조를 맞추더라도 너무 전면에 나설 필요는 없다. 우리가 나름의 주인 의식을 갖고 국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특히 중국에는 당당하되 경제 분야에서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등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역내 평화와 안정, 상호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의 일환으로 중국과의 전략대화를 추진하고 인문 교류를 확대해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공동 이익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또 우리가 차기 한중일 3국 정상회의의 개최국인 만큼 이를 대중 관계의 전기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와는 별도로 과도한 대중 경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투자 및 경협의 대상을 다변화해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 구축과 관련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국가와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가속화하는 신냉전·블록화 속에 한국 외교가 가야 할 방향은.

△지금은 외교의 시대다. 중국은 다른 나라에 강압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미국도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고 있으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미중 경쟁도 상당히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이념적 외교를 떠나서 우리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 혼자의 힘으로 헤쳐나갈 수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여러 다자협의체에 들어가 공동의 목소리를 내면 그 속에서 우리 나름의 이익을 찾을 수 있다. 소다자 체제를 적극 활용하는 등 외교 전선을 다양화·다변화해야 한다.

◆He is…

1954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제11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부에서 북미국장, 주포르투갈대사, 주오스트리아대사, 차관보 등으로 일했다. 청와대 외교통상비서관을 지냈으며 1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현재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한일친선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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