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지만 성실한 남편과 해맑은 아이들, 모든 것이 문제 없이 흘러가는 삶. HBO 맥스 오리지널 드라마 ‘러브&데스’가 그리는 1970년대 후반, 미국 텍사스의 한 마을에 사는 주부 ‘캔디 몽고메리(엘리자베스 올슨 분)’는 권태로움을 느낀다. 캔디는 완벽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는 교회 목사와 절친한 친구이며 성가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단지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매일 같이 만들면서도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낄 뿐이다.
캔디의 이웃인 ‘베티 고어(릴리 레이브 분)’은 그와 대조되는 인물이다. 우울증을 겪고 있고 남편 ‘앨런(제시 플레먼스 분)’과의 관계도 바늘 끝에 오른 듯 날카롭다. 모든 일의 시작은 캔디가 베티의 남편인 앨런에게 장난스런 고백을 하면서 벌어진다. “당신에게 끌려요. 그냥 후련하게 털어놓고 싶었어요.” 이들은 서로의 배우자를 기만하며 비밀스러운 행각을 이어간다.
불륜마저도 고루한 광경이지만, 언뜻 지나가는 플래시백이 불길한 결말을 암시한다. 캔디와 앨런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 끝내기로 한 피상적인 관계였음에도 흔적을 완벽히 숨기지 못한다. 이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피가 튀는 격렬한 다툼 끝에 누군가가 목숨을 잃었다. 살인자는 캔디이며, 피해자는 베티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캔디는 마을 속으로 섞여 들었다. 그러나 그의 죄가 들키는 건 시간 문제다.
드라마는 실제로 일어났던 미국의 살인사건을 다룬다. 1980년 텍사스의 한 주부가 도끼로 이웃을 40차례 내려쳐 살인한 사건은 당시 미국 사회에 충격을 낳았다. 이 사건은 디즈니+의 5부작 드라마 ‘캔디: 텍사스의 죽음’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작품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건 캔디를 연기한 엘리자베스 올슨의 연기다. 우아하고 다정한 주부를 완벽히 소화하면서도 일그러진 내면을 간간이 비춘다. 캔디가 베티를 살해한 이후 그의 연기는 한 층 입체적으로 변모한다. 캔디는 자신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범적인 이웃으로 살인 사건을 마주하길 택한다. 사건이 법정으로 넘어간 후에는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와 함께 드라마 속에서 아주 짧게만 스쳐가는 살인의 순간도 처절하게 재현한다.
다만 드라마는 실제 사건의 피해자인 베티를 그리는 시선이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베티는 ‘태피스트리’처럼 다채로운 색깔을 드러내는 캔디에 비해 단조롭고 편집증적인 인상이다. 미국 연예 매체 콜라이더는 “남편의 불륜에 무지하던 베티가 더욱 복잡한 감정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은 드라마에서 잘 담기지 못했다"면서 “베티는 종종 앨런이 견뎌야 하는 까다로운 아내 역할로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패션과 디스코의 유행 등 1970년대 미국의 모습이 여과 없이 담겼다. 캔디는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통해 무료함을 채운다.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그의 살인은 어떠한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2017년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로 에미상을 수상한 제작자 데이비드 E. 켈리가 각본을 쓰고, 배우 니콜 키드먼도 제작에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HBO 맥스와 콘텐츠 계약을 맺은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7부작.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