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퇴직연금 적립금을 국채형 익일물 환매조건부채권(RP)과 머니마켓펀드(MMF) 등에도 100% 투자할 수 있게 허용하며 상품 운용의 자율성을 높여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 제고를 지원한다. 또 퇴직연금 비사업자에게도 공시 의무를 부여해 금리 경쟁을 유발하는 이른바 ‘커닝 공시’를 원천 차단하기로 했다. ★본지 5월 12일자 21면 참조
금융위원회는 1일 이 같은 내용의 ‘퇴직연금 감독 규정 개정안’을 발표하고 다음 달 2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지금까지 퇴직연금 사업자에게만 적용하던 공시 의무를 비사업자의 원리금 보장 상품에도 도입하기로 했다. 금리를 공시하지 않은 원리금 보장 상품의 판매는 금지한다.
공시 의무가 없는 비사업자들은 공시된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이자율을 살핀 뒤 자사 원리금 보장 상품의 금리를 이보다 높은 수준에서 설정하는 ‘커닝 공시’를 해왔는데 이를 없애겠다는 취지다. 지금은 퇴직연금 사업자만 매달 1일부터 3영업일 전까지 퇴직연금 금리를 공시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나아가 수수료를 활용한 변칙 고금리 원리금 보장 상품도 봉쇄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일부 퇴직연금 사업자는 수수료를 보조금처럼 활용해 고금리 예금 등을 만들고 이를 일부 대기업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에만 독점 제공했다. 실제로 금융위에 따르면 A 은행의 경우 퇴직연금 사업자 B 사에 예금 금리로 6.3%를 제시하면서 자사가 금리 5.0%를 제공하는 대신 ‘예금 금리 보조’ 명목으로 1.5%포인트의 수수료를 지급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예금 금리와 수수료 간 차액인 0.2%포인트 만큼의 수익은 A 은행이 가져갔다.
파생결합사채 관련 규율도 대폭 강화한다. 사모 파생결합사채 판매는 아예 금지하고 원금 보장형 공모 파생결합사채는 공시 의무, 수수료 금지 등의 규제를 원리금 보장 상품과 동일하게 적용받도록 한다. 실제로는 원리금 보장 상품이면서 규정상으로만 규제를 피하는 변칙 상품의 뿌리를 뽑겠다는 취지에서다.
규제는 강화하면서 퇴직연금 상품의 편입 폭은 크게 넓혔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100%까지 편입할 수 있는 상품 범주에 국채·통화안정채권(통안채) 등을 담보로 한 익일물 RP와 MMF 등을 추가했다. 채권 혼합형 펀드의 주식 편입 한도도 40%에서 50%로 올린다.
사업자가 운용하는 DB형과 달리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개인(IRP)형 퇴직연금에 대한 이해상충 규제도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한다. 적립금 대비 10%로 제한된 계열사 주식 편입 한도를 DC형은 20%, IRP형은 30%로 상향하기로 한 것이다. 동일인이 발행한 특수채·지방채에 대한 DB형 상품의 투자 한도도 현 적립금 대비 30%에서 50%로 확대한다.
당국은 이에 더해 은퇴 근로자들이 IRP형 상품에서 적립금을 연금 형태로 인출할 수 있는 ‘보증형 실적 배당 보험’ 도입도 추진한다고 알렸다. 보증형 실적 배당 보험은 보험료를 실적 배당 펀드로 운용하는 상품이다. 이익이 발생하면 연금을 지급하고 손실이 나더라도 일정 금액을 보장한다. 은퇴자들이 일시금 형태가 아닌 연금 형태로 퇴직연금을 수령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당근책이다. 금융위는 보험개발원이 보증수수료 요율 검증 절차 등을 마련한 뒤 내년부터 관련 상품이 출시될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위는 3분기 중 퇴직연금 감독 규정 개정안을 시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