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 외교장관들이 억압에 맞서 회원국 간 연대를 강화하고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공동성명을 내며 세를 과시했다. 미국 등 서방 강대국들과 경쟁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셈이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영장이 발부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월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지 여부가 더 큰 관심사로 부각되면서 목소리가 빛이 바랬다.
브릭스 외교장관들은 1일(현지 시간)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회의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로이터 통신은 “브릭스 외교장관들이 다극화된 세계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야망에 관심을 집중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의 주 관심사는 푸틴이었다. 질문 대부분이 푸틴이 8월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 가능한지에 집중됐다. ICC는 푸틴에 대해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로, 남아공은 브릭스 회원국이자 ICC 회원국이어서 푸틴이 입국할 경우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날레디 판도르 남아공 외무장관은 “푸틴이 참석할 경우 여러 선택지를 검토 중”이라며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이 최종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채택한 공동성명은 핵심 부문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약속을 재확인하면서 “이는 상호 존중과 이해, 평등, 연대, 개방, 포용, 합의”에 기반한다고 밝혔다. 일방적인 억압적 조치에 대해서는 “유엔 헌장 위반이자 개발도상국에 특히 부정적 영향을 준다”며 우려를 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어지는 국제사회 제재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은 유엔 안보리 등 글로벌 의사결정 과정과 경제력 집중을 개혁해야 한다며 “매우 많은 국가들의 운명이 소수의 자비에 맡겨져 있다”고 지적했다.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이란·아랍에미리트(UAE) 등이 브릭스 가입을 요청한 것과 관련해 “브릭스 영향력을 높이고 개도국 이익을 위한 권한을 부여할 것이기 때문에 기쁘다”고 말했다.
또한 성명은 “브릭스 회원국 및 무역 상대국과 금융 거래 및 국제 무역에서 현지 통화를 사용하도록 촉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브라질, 중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이른바 ‘탈달러’ 기조와 같은 맥락으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는 시도 중 하나로 풀이된다. 날레디 장관은 “은행 고위 간부들이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통화에 대한 대체 통화의 잠재적 사용 가능성에 대해 브리핑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