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지진(Age-quake)이라는 단어가 있다. 1999년 영국의 인구학자 폴 월리스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저출생과 고령화가 사회에 미칠 충격을 예견한 말이다. 인구감소를 자연재해에 빗댄 데는 준비 없이 맞는 고령화가 우리 사회의 근본을 흔들 만한 파괴력을 가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가 목전에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돼 ‘인구지진’의 위험이 예상되지만, 우리 노후를 보장할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고려대는 이 같은 고령화가 가져올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말 고령사회연구원을 개소했다. 기존의 고령사회연구센터를 흡수하고 의대와는 치매 연구, 공대와는 돌봄 로봇을 연구하는 등 초고령사회 대비 융합 연구를 진행한다. 일본 도쿄대학 고령사회종합연구기구, 중국 칭화대학 고령사회연구소, 푸단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등과 한·중·일 네트워크도 꾸렸다. 연구원의 첫 성과물인 연금 개혁 연구 결과도 공개를 앞두고 있다. 라이프점프는 지난달 24일 김태일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장(행정학과 교수)에게 그간의 활동과 연금 개혁 방향에 대해 들었다.
1998년 연금개혁으로 2013년부터 2033년까지 2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연금 개시 연령을 상향해 2033년에는 65세에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지난해 평균 퇴직 연령이 50세라는 점이다. 지난 2월 국회미래연구원이 발표한 ‘정년제도와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이 지난해 49.3세까지 내려왔다. 퇴직 후 공적연금 급여가 개시되는 65세까지 15년간의 보릿고개가 시작된다. 김 원장은 “연금을 65세부터 탄다는 건 최소한 64세까지 일을 한다는 전제가 돼야 하는데, 퇴직(정년 60세)을 시켜놓고 공백을 만드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연금 정책은 노동 정책과 함께 가야하는 만큼 정년도 연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금 급여가 낮은 것도 문제다. 노인 빈곤과 상관관계가 높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평균소득자의 소득대체율은 31.2%로 은퇴 전 평균소득이 월 250만 원이었다면 연금액은 약 78만 원이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40년으로 가정했을때라 실제 급여액은 더 낮아질 수 있다. 2023년 국민연금 급여액 평균은 월 65만 원 정도다. 김 원장은 낮은 연금 급여의 원인으로 ‘가입 기간’을 지적했다. 특히 돌봄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대한 보상으로 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하는 ‘크레딧’이 유럽 등에 비해 박한 것도 원인이다. 그는 “유럽은 평균 가입 기간이 35~36년으로 우리보다 훨씬 길고 나라 별로 출산하면 아이 한 명당 3~4년의 크레딧을 준다”며 “독일은 학생에게도 정부가 크레딧을 내주지만 우리는 둘째부터 12개월, 셋째부터 18개월을 인정하고 실업 크레딧도 1년 뿐”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에는 노인이나 장애인 등을 돌보면 ‘돌봄 크레딧’을, 스웨덴에서는 아이 한 명당 4년을 육아 크레딧으로 인정한다. 우리도 연금 크레딧을 확대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크레딧의 일부를 연금 기금에서 충당하는 구조다보니 가뜩이나 고갈 우려가 제기되는 연금 재정을 고려할 때 한계가 뚜렷하다.
김 원장은 크레딧 재원 마련의 해법으로 기초연금 수혜 대상 조정을 내세웠다. 그는 “노인 빈곤 해소를 위해 기초연금을 지급하는데 대상자를 소득 하위 70%로 정하니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수령한다”며 “현재 수급자가 손해를 보지 않게 20년 정도 장기간에 걸쳐 수급 대상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이어 “그렇게 만든 재원으로 군입대자나 돌봄 분야 연금 크레딧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국민연금 개혁을 통해 현행 9%인 보험료율도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0년 기준 스웨덴(22.3%), 독일(18.6%), 일본(18.3%) 등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훨씬 낮다. 그는 “보험료율이 낮아 당연히 기금이 없어진다”며 “당장 두 배로 올리기 어려우니 조금씩 올리되 조세를 활용해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에 대한 크레딧 확대를 병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금 개혁은 저항이 상당한 만큼 국정 동력이 강한 정권 출범 초기에 단행해야 한다. 김 원장은 연금 개혁은 빠를 수록 좋은 만큼 이번 정권 후반부부터 논의를 시작해 다음 정권 초기 결단을 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연구원은 다음 과제로 ‘돌봄’을 주목하고 있다. 김 원장은 “베이비부머가 80세를 넘기는 15년 후쯤이면 돌봄 인력 부족이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며 “정보통신기술(ICT)이 어느 정도 빈틈을 메꿀 수 있겠지만 지금부터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