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청론직설] “대기업 노조 기득권 지키기 초래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해야”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기득권 노조 이익 우선주의에 임금 배분 공정성 논란

사내 임금 이중성 개선 주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임금 인상분 협력사 분배 요청한 도요타 노조 배우고

정치투쟁 통한 노정 유착 멈추고 노조 본연 역할 해야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 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 노조가 이제는 특권 의식을 내려놓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욱 기자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 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 노조가 이제는 특권 의식을 내려놓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욱 기자




청년 실업 등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현격한 임금 격차 등이 일자리 양극화와 청년 실업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의 과도한 임금 인상 등이 비정규직 양산을 부추기고 있어서 기득권 지키기에 매몰된 강성 노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요구와 이에 따른 높은 임금 및 혜택이 노동시장을 갈라놓았다”면서 “이는 노동시장의 공정성 논란을 증폭시키면서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원장은 “거대 노조도 이제는 사내의 공정한 임금 배분 문제 해결을 주도해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나서야 한다”며 “정치·이념 투쟁을 통한 정치권과의 밀착으로 기득권 지키기에 나서는 대신 노조 본연의 역할을 하는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시장 양극화가 한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것은 임금과 안정성 측면에서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뉜 현상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대기업 정규직 10%와 중소기업·비정규직 90%로 갈라졌다. 그래서 학생들은 명문대를 진학한 뒤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마저 한국의 이 같은 명문대·대기업 정규직 집착 상황을 ‘황금 티켓 신드롬(Golden Ticket Syndrome)’이라고 지적했다. 명문 대학에 대한 집착이 교육제도를 왜곡시키고 양분된 노동시장이 청년 고용과 출산율 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발생 원인은 무엇인가.

△노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블루칼라 노조가 임금 인상을 내세워 협상을 주도하고 타결하면 사무직 직원도 임금 인상 등의 혜택을 누렸다. 인건비 부담이 높아진 기업은 정규직 선발 대신 비정규직 채용을 통해 직원을 충원하면서 전체 인건비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제품 가격에 임금 인상 분을 반영할 수 없으니 비정규직 직원 등에게 비슷한 업무를 맡기고 낮은 임금을 주면서 노조 요구에 의한 임금 인상분을 절약해야 했다.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요구가 우리의 노동시장을 둘로 나눠놓는 것을 부채질한 것이다. 실제 노조 조직률이 높은 기업일수록 임금 수준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을 정도다.

-비정규직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아직까지 개선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도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의 노동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에 막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기업이 부담할 수 있는 임금 등은 한정된 상황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제도로 임금 분배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노조가 자신들의 이익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기업과 사회의 관점에서 노조의 역할을 되돌아봐야 한다. 기업도 협상을 통해 노조에 사내 임금의 이중구조를 설명하고 설득해 절충점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노조가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게 문제다.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호봉제 중심의 임금 체계를 직무급제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청 근로자는 물론 파견 근로자에 직무급제를 도입해 임금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하지만 노조의 반발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일본은 이미 10년 전부터 조금씩 직무급제를 도입해 노조의 반발을 줄여왔다. 긴 호흡으로 직무급제로 조금씩 전환해가야 대기업 내부의 노동시장 불공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노조의 협력과 변화도 선행돼야 하지 않나.

관련기사



△우리나라 노조는 지난 30~40년 동안 투쟁을 중심으로 기득권 지키기에만 집중해왔다. 이제는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들은 그동안 사회 공헌 활동 등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적극 나서 기업 이익을 사회와 공유하기 시작했다. 노조도 사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배 개선을 주도해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Union Social Responsibility)을 시작해야 한다. 노조가 자신들의 이익에만 매몰되면 기득권자의 대변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노조는 아직 경제적 취약층에 대한 연탄 지원 등 보여주기식 사회 공헌 활동에 그치고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다른 노동자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노조도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

-노조의 성향과 투쟁 방식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해외 국가들이 있는가.

△일본에서도 과거 노조의 지나친 요구로 인해 기업들의 경쟁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적이 있다. 하지만 도요타 등은 노조와의 협력을 통해 사내 임금 분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과거 도요타 노조가 자신들에 대한 임금 인상분을 협력사에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는가. 도요타 노조는 협력사 챙기기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회사가 이익을 내는 구조로 변신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다. 결국 그 과실을 노조가 회사와 같이 누리고 있다.

-최근 정부가 노조 회계 투명성을 요구하는 데 대해 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노조가 치외법권 지역에 있을 수는 없다. 종교가 중세 시대에 치외법권서 특권을 누렸지만 기득권을 내려놓고 일반 시민과 동등하게 사회의 법과 질서 등 통제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근대화의 출발점이었다. 우리 노조는 정치 뒤에 숨어 정치를 후견 세력화하면서 진영 논리를 구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국민 눈높이에서 시민 정신에 맞게 법과 질서를 따라야 한다. 노조가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지속 가능한 노동운동의 전제 조건이다. 과거 노조 회계에 투명성 문제가 있었지만 정치적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노조는 아직도 특권 속에 머물려 하고 있다. 노조에 회계 자료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탄압을 가하거나 예외적인 불이익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바로 과거 노조가 누린 특권을 내려놓고 사회 구성원이 공감하는 보통의 질서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노조의 ‘고용 세습’도 도마 위에 올랐는데.

△과거 우리 기업은 산업화 과정에서 인력을 채용할 때 근로자의 지인·친인척 추천과 인적 보증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구가하던 시기의 구인난에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인력 충원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 결국 이 같은 인력 선발이 관행처럼 이어지면서 명문화 작업을 거쳐 노조원 자녀 우선 채용 등의 단체협약으로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경제 성장 둔화에 따른 신규 고용 감소로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고 대기업 일자리에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공정성 논란으로 확대된 것이다. 채용 문화와 절차도 경제 및 시대 상황에 맞춰 변해야 한다. 그런데 유독 대기업 노조는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하고 있다.

-최근 거대 강성 노조가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민폐 집회’를 강행해 논란이 됐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집회와 시위는 다수의 국민과 공존하는 범위 내에서 평화적이고 질서 있게 이뤄져야 한다. 노조의 집회 및 시위가 질서의 규제를 벗어나면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고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 노조가 길거리 음주와 노숙을 통해 국민들에게 얼마나 피해를 줬는지 반성해야 한다. 문제는 노조가 이에 대한 인식이 없는 듯하다.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특권 의식 때문이다. 노조는 일반 시민들이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조는 자신들의 입장을 압축적으로 선명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과의 연계가 특권 의식을 키우지 않았나.

△노조가 정치 구호를 내걸고 정치 투쟁에 나서는 것은 노동운동의 본령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노조가 정치 투쟁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정치 세력을 자신의 우호 집단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야권도 자신들을 대신해 정부를 공격하는 노조들에 혜택을 부여하며 노조와 정치적 거리를 좁히고 있다. 노조와 정치의 공생 관계 또는 유착이 계속 이어지면 거대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만 강화하는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노동계를 의식한 포퓰리즘 입법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

-거대 야당은 불법 파업을 조장할 수 있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즉 ‘노란봉투법’을 강행할 태세다.

△노란봉투법의 가장 큰 문제는 정당성이 없는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가령 근로 조건 개선이 아닌 정치 파업, 회사 매각·구조조정 반대 등의 파업이 있을 때도 회사는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능하다. 결국 노조에 손해배상의 면책 범위를 확대한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노조의 무리하고 빈번한 투쟁을 조장해 노사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기본적으로 노조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해준다는 발상 자체가 또 하나의 특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노사 대등성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He is…

1966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임용됐으며 2020년부터 노동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노동법 이론실무학회 회장과 한국사회보장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노동법강의와 통상임금의 이해, 사회보장법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저술했다.


김상용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