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공짜 전기는 없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 경제학계의 거목 밀턴 프리드먼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생전에 자주 인용해 유명해진 경구다. 특정 이익을 얻으면 그에 상응하는 기회비용(대가)은 있기 마련이라는 삶과 경제 활동에 대한 평범한 진리를 담고 있다.

공짜 점심이 없듯 공짜 전기도 없어야겠지만 한국에는 있다. 전기를 판매하는 한국전력은 3월 기준 판매단가가 ㎾h(킬로와트시) 당 139.28 원이었는데 발전 자회사 등에서 사오는 전력 구매단가가 172.47 원이었다. 국민 1인당 전기 사용량이 연간 1만330 kWh(2021년 기준)이니 한 해 30만 원어치 이상 전기를 공짜로 쓴 셈이다.



공짜 전기는 그러나 역시 공짜가 아니다. ㎾h당 30 원 넘게 손해를 보며 전기를 판 한전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32조 603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종전 최대인 2021년(5조8465억 원)에 비해서도 6배에 육박한다.





한전의 최대주주는 한국산업은행으로 32.9%(3월말 기준)의 지분을 갖고 있다. 산은의 특수관계인인 대한민국 정부가 18.2%의 지분을 가진 2대주주인데 정부가 산은 지분 100%를 갖고 있으니 한전 경영권은 정부에 있다. 전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도 6.37%를 가진 3대주주다.



한전의 손실은 정부와 국민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다음이 외국인 투자가들이며 70만 5000여 명의 소액주주들도 나눠 분담하고 있다. 한전의 영업손실이 급증한 최근 2년간 6조 원 이상의 시가총액이 사라질 때 소액주주 수 만 명이 ‘눈물의 손절’을 클릭하며 시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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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책임의 크기로 따지면 정부가 당연히 크고, 소액주주도 투자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공짜 전기는 애먼 기업과 국민까지 잡는다. 한전은 손실을 메우려 작년에 총 31조8000억 원의 한전채를 발행했다. 손해를 보며 전기를 팔려고 빚을 낸 셈인데 금리 인상 시기와 맞물리며 치솟은 한전채 금리에 투자자들이 몰렸다. 경영 상황을 보면 한전채는 투기 등급이 마땅하지만 정부가 보증을 서니 신용등급이 트리플A로 최고다. 여기에 이자율까지 높아 투자자들이 쏠리는 ‘한전채 블랙홀’ 현상이 시장을 휩쓸었다.

시중 금리 상승에 은행 대출이 막히거나 어려워져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발행해 현금을 확보하려던 기업들은 자금이 한전채로 몰리자 ‘돈맥 경화’로 위태로워졌다. 더욱이 지난해 9월말 이후는 레고랜드발 채권 시장 위기로 가뜩이나 현금 구하기가 어려운 때여서 SK·LG 같은 우량 대기업도 울며 겨자먹기로 2~3%포인트 이상 금리를 더 부담하며 회사채를 발행해야 했다. 한전의 자금난은 현재 진행형이어서 올해도 한전채를 10조 원 넘게 찍었는데 5일 4000억 원을 더 발행해 10조 5500억 원에 이른다.

공짜 전기로 요금 부담을 줄인 소비자와 기업은 행복할까. 앞서 인용한 한국인의 1인당 전기 사용량은 세계 3위 수준으로 매우 높다. 전기요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4~5번째로 싸고 독일·일본에 비하면 절반도 안돼 가게 문을 열어놓고 에어컨을 펑펑 쓰는 과소비가 심심치 않기 때문이다.

전기는 편리하고 안전한 고급 에너지지만 여전히 만드는데 유연탄이나 천연가스 등 온난화의 주범인 화석연료가 동원된다. 동맹인 미국조차 한전이 전기를 싸게 공급해 불공정한 보조금을 지급한다며 통상 문제를 제기하고 기업들에 압력을 가하는 실정이다. 한전의 천문학적 손실을 최대주주로서 감당해야 하는 산은은 자기자본비율 추락으로 수십조원의 대출 여력이 줄어 기업 자금난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전력 공급의 안정성은 국민 생활의 기본이자 국가 안보의 초석이다. 단기 정전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불편이 생길지 잠시만 생각해보면 한전의 정상적 투자 활동과 경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공짜 전기의 청구서는 돌고 돌아 결국 더 큰 국민 부담과 피해로 돌아온다.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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