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바이오

작가 권익도 중요하지만…시장 왜곡·국내 역차별 '추급권 부작용' 우려

■커지는 '추급권' 논란

두번째 판매부터 작가에 차익보상

500만원 미만 재판매엔 적용안돼

화랑 "무명작가엔 효과없어" 지적

첫구매부터 가격인하 요구할수도

일각선 "추급권 작가 보호 위한 것

시행령 등 통해 부작용 보완 가능"


국회에서 논의 중인 미술진흥법에 ‘미술품재판매보상청구권(추급권)’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옥션·화랑 업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추급권은 미술 작품이 두 번째 판매될 때부터 판매가의 차익 일부를 작가에게 보상하는 제도다. 이들은 추급권이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자칫 미술 시장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창작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지난 3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한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3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한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화랑협회는 지난달 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미술진흥법 반대 의견서에서 “1차 판매조차 어려운 작가들에게 추급권이 있다고 해도 상징적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추급권이 무명작가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구매자들이 추급권을 감안해 화랑이나 작가에게 첫 구매부터 가격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다. 법안에 따르면 ‘재판매가가 500만 원 미만이거나, 매도인이 원작자로부터 작품을 직접 취득한 후 3년 이내에 재판매할 때는 재판매가 2000만 원 미만일 경우’ 추급권을 적용하지 않는다. 협회는 “구매자들이 500만 원이 넘는 작품을 살 때 법 적용을 받지 않기 위해 낮은 가격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 시장이 왜곡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미술 시장은 추급권을 도입할 만큼 성장하지 않아 시기상조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구매자들이 해외 작가의 작품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제기했다. 3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제출한 수정안에는 ‘작가가 외국인일 때 작가의 소속 국가에서 한국 작가에 대한 추급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내에서도 외국 작가에게 추급권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상호주의 규정이 들어갔다. 화랑과 옥션은 이 조항이 국내 작가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추급권을 적용하지만 전 세계 미술 시장의 44%를 차지하는 미국은 캘리포니아주를 제외한 대다수의 지역에서 추급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 해외 갤러리들이 한국에 대거 진출해 영업을 시작한 상황에서 국내 화랑의 경쟁력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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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위가 실질적 이해 당사자인 옥션·화랑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생략한 채 법안을 의결한 것 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올 3월에 진행된 국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김승수 국민의힘 위원이 공청회를 왜 생략했는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했는지 묻자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현재 문제를 제기한 기관은 없다”고 답한다. 이에 대해 주요 옥션들은 “화랑협회·예술인협회처럼 기업을 아우를 단체가 없어 개별적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며 “이를 두고 업계가 반대하지 않았다고 잘못 파악하고 추급권을 성급하게 도입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법안이 도입되면 화랑업은 지방자치단체 신고 대상이 된다. 고객, 판매, 기타 영업 정보를 정부 또는 특정 기관에 제공해야 하며 진품 증명서 발급의 책임도 진다. 고가 작품 위작 사건의 재발을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업계는 “미술품 구매자들은 대개 자신의 정보를 노출하고 싶어 하지 않고 작품의 진품 여부는 작가 본인만 알 수 있는 시장구조에서 화랑에만 지나친 책임을 부과한다”고 반발한다.

반면 창작자들을 대변하는 미술계는 우선 법을 제정한 후 시행령을 정교히 하면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며 빠른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미술품은 완성된 후 바로 가치가 형성되는 구조가 아니다. 작가가 유명하지 않을 때는 저가에 작품이 팔리거나 혹은 팔리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다. 세월이 흘러 일부 작품이 2차, 3차 거래에서 수억 원대로 가치가 오르더라도 작가에게는 아무런 수익이 돌아가지 않는다. 박수근의 ‘빨래터’가 2007년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 원에 거래됐지만 작가와 유가족은 평생 큰돈을 만져보지 못했던 일은 유명하다. 지난해 말 한국미술협회 등 미술계 21개 단체 및 기관들이 ‘미술진흥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효성이나 일부 부작용이 우려되더라도 미술품 가치 상승에 따른 차익을 작가에게 일부라도 제공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내에서는 2007년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EU가 미술품 거래에서 추급권 도입을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약 80개 국가들이 작가의 사후 30년까지 추급권을 보장한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럽 사례를 바탕으로 미술품이 양도된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추급권을 청구하도록 하는 미술진흥법 제정안을 2021년 발의했다.

지금까지 미술은 ‘문화예술진흥법’상 하위 분야로만 여겨져 수많은 세부적 이슈를 제도적으로 포괄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정부가 예술인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당시에는 관련 법이 없어 일부 작가들이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미술계 관계자는 “미술진흥법은 미술계의 오랜 염원이고, 창작자들의 권익과 관련한 법”이라며 “3년의 유예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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