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그랜저를 사는 소비자는 다음달부터 정부에 36만 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합니다. 정부가 2018년부터 5년 동안 시행해 온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종료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자동차 개소세는 당장 다음달부터 승용차 출고가의 3.5%에서 5%로 1.5%포인트 인상됩니다.
기존 개소세 인하 혜택의 한도는 100만 원이었습니다. 만약 소비자가 인하 혜택을 모두 받을 경우 개소세 100만 원, 교육세 30만 원, 부가가치세 13만 원 등 최대 143만 원까지 세금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개소세 인하 조치가 끝나면 그만큼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자의 세 부담도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정부가 개소세 인하 조치를 끝내기로 결정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기가 개선된 만큼 내수 진작을 위해 도입한 개소세 인하 조치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금 정책을 내놓는 기획재정부 측은 "최근 자동차 산업 업황이 호조세고 소비 여건도 개선되고 있다"며 "(개소세 인하 조치는) 과거 코로나19에 대응한 내수 진작 대책으로 정책 목적을 달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정부가 밝히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정부 예상보다 세금이 적게 들어오는 '세수 펑크'가 대표적입니다. 이미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걷힌 세금은 134조 원으로 1년 전(167조 9000억 원)보다 34조 원 가까이 적습니다. 올 5월부터 연말까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세금이 걷힌다고 가정해도 올해 세수는 세입 예산보다 38조 원 5000억 원 가까이 모자랄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기재부가 감세 정책인 개소세 인하 조치를 끝내기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만 소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당초 정부는 지난 7일 국산차 과세표준을 낮춰 소비자 세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홍보했습니다. 당시 정부 발표대로면 그랜저 가격은 54만원 줄어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불과 다음날(8일) 개소세 인하 조치를 종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결국 과세표준과 개소세율 변동을 종합하면 그랜저를 구입할 때 내야 하는 세금은 36만 원 늘어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동차 세 부담이 줄어든다는 기대감이 하루 만에 뒤집힌 셈입니다. 이에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조삼모사냐" 등의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자동차 산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마침 자동차는 수출액이 11개월 연속 증가하며 생산도 본격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실제 올 4월 기준 자동차 생산은 1년 전보다 16.6% 증가했습니다. 반도체 출하가 20.3% 감소하고 재고가 31.5% 급증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하지만 개소세 인하 조치가 이달 말로 끝나면 자동차 출하가 줄고 재고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자동차 소비 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동차 개소세 인하 조치가 2018년부터 시행된 만큼 연장되지 않으면 소비 심리가 꺾이는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안 그래도 체감물가가 오르고 있어 올 하반기 내수 소비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감세(減稅) 정책을 줄줄이 원상 복귀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정부 내부에서도 올해 세수 펑크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만큼 개소세 인하 조치 종료가 감세 정책 원상 복귀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정부가 당장 올 8월 종료 예정인 유류세 인하 조치를 중단할지 주목됩니다. 앞서 정부는 물가 부담 등을 고려해 지난 4월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올 8월 말까지 4개월 연장했습니다. 기재부는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 인상 여부도 조만간 결정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