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무섭게 변한 하늘이 우승 길목을 막아서는 듯했다. 하지만 박민지(25·NH투자증권)는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았다. 자신의 경기에만 무섭게 집중한 끝에 얻은 기록은 ‘단일 대회 3연패’. 시즌 첫 승과 함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역대 다섯 번째 대기록을 화려한 경력에 추가했다. 박민지 이전 3연패는 고 구옥희(1982년), 박세리(1997년), 강수연(2002년), 김해림(2018년) 4명뿐이었다.
박민지는 11일 강원 양양의 설해원 더 레전드 코스(파72)에서 끝난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에서 3라운드 합계 11언더파 205타를 적어 2년 차 이예원과 연장에 간 뒤 3.5m 이글 퍼트 성공으로 우승했다. 이예원의 8.5m 이글 퍼트가 살짝 빗나간 후 박민지의 퍼트는 홀을 빙글 돌더니 쏙 들어가 숨었다.
상금은 2억 1600만 원. 어울리지 않게 올 시즌 상금 랭킹 31위에 처져있던 박민지는 여덟 번째 출전 만에 올린 시즌 첫 승으로 단숨에 상금 4위(약 3억 1200만 원)까지 올라갔다. 상금왕 3연패를 향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것이다.
통산 17승째를 거두면서 박민지는 역대 최다 우승 공동 3위(고우순)에도 이름을 올렸다. 공동 1위인 구옥희와 신지애의 20승에 3승 앞으로 다가섰다. 통산 상금은 2위를 유지(약 53억 5100만 원)했지만 1위 장하나와 격차를 약 4억 원으로 좁혔다. 박민지는 2021시즌과 2022시즌에 각각 6승씩 몰아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우승으로 끌어올린 페이스를 유지해나간다면 올 시즌 안에 역대 최다 우승과 통산 최다 상금 기록을 경신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라운드까지 박주영과 공동 선두였던 박민지는 마지막 날 버디 5개와 보기 4개로 1타를 줄였다. 4번 홀까지 버디-보기-버디-보기로 타수를 줄이지 못하던 박민지는 11번 홀 버디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161야드짜리 파3 홀 티샷을 핀 3m에 떨어뜨린 것이다. 2위와 2타 차로 멀어지며 미소를 흘린 박민지는 1온이 충분한 짧은 파4인 13번 홀에서 그린에 미치지 못했지만 어프로치 샷을 핀 30㎝에 붙이는 기술로 또 1타를 줄였다. 2위 그룹과 3타 차가 됐고 이때 낙뢰로 경기가 중단됐다. 얼마 뒤 우박까지 쏟아졌다.
약 3시간의 뜻하지 않던 휴식이 경기 흐름을 바꿔 놓았다. 남은 다섯 홀에서 지키기만 해도 우승하는 분위기였던 박민지는 경기 재개 뒤 15·17번 홀(이상 파4) 보기로 위기를 맞았다. 시즌 개막전 우승자 이예원에게 동타를 허용했고 18번 홀(파5)에서 이예원이 버디를 잡으면서 1타 차 역전까지 허용했다.
박민지는 그러나 마지막 홀에서 침착하게 2온 뒤 2퍼트로 버디를 보태 연장에 간 뒤 18번 홀에서 계속된 1차 연장에서 경기를 끝내버렸다.
박민지는 ‘시야 좁히기’ ‘멀리 보지 않기’의 마인드셋으로 우승 문을 열었다. 시즌 첫 승이 다소 늦어 한때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는 그는 최근 들어 “경기 때는 눈앞의 샷에만, 연습 때는 그 시간의 연습에만, 인터뷰할 때는 인터뷰에만 집중하는” 식으로 ‘바로 지금’만 생각하는 멘탈을 훈련했다고 한다. 그 효과가 이번 대회 첫날부터 나타나 3연패 대기록에 대한 부담을 잊고 경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다음 달 US 여자 오픈이라는 중요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박민지는 이번에도 “그 전에 있을 국내 대회 생각만 하고 있다”고 했다.
이소미와 정윤지가 9언더파 공동 3위이고 상금 1위 박지영은 6언더파 공동 16위다. ‘초장타 신인’ 방신실은 6타나 줄이는 뒷심으로 5언더파 공동 21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