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잭팟’을 터뜨리고 있는 국내 방위산업체(K방산)가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급증해서만은 아니다. 지난해 기준 수주 잔액 100조 원을 돌파한 K방산은 수출의 질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2017년 2종에 불과했던 수출 품목은 지난해 6개로 늘었고 수출 국가도 아시아·중동 국가 위주에서 유럽·아프리카 등으로 넓어졌다. K방산의 수출 증가가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K방산이 반도체·자동차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출 효자’로 본격적인 고속 성장의 궤도에 올라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액 173억 달러(약 22조 3000억 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K방산의 올해 수출액은 정부 추산 200억 달러(약 25조 8000억 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사상 첫 수주 잔액 100조 원 시대를 열었던 좋은 흐름이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무기 4종의 1차 이행 계약만으로 124억 달러를 쓴 폴란드와 잔여 계약을 추진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안보 위협을 느낀 다른 유럽 국가들과도 노후화한 무기를 교체하는 작업을 논의하고 있다.
최근 K방산의 수출은 품목과 수출국이 다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품목은 탄약부터 전차·자주포·전투기·잠수함 등으로 다양화됐고 수출 국가 역시 기존의 아시아·중동 국가에서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됐으며 절대적인 숫자도 크게 늘었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의 방산 수출 품목은 K-9과 T-50 2개뿐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청상어 어뢰와 훈련 비행기 KT-1B가 추가됐고 2019년에는 잠수함과 해성 미사일까지 해외로 수출했다. K방산의 르네상스를 맞은 지난해에는 수출 품목이 K-9자주포, FA-50, M-SAM II, K-2전자, 천무, 원양경비함 등 6종으로 늘었다.
수출 국가도 다변화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 지역에 군비경쟁이 벌어지면서 K방산을 찾는 EU 회원국들이 많아졌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국방비 지출액은 2조 24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3.7% 늘었고 특히 유럽 지역은 냉전 이후 30년 만에 가장 많은 군비를 지출하고 있다. 폴란드는 지난해 T-50(FA-50), 천무, K-2전차, K-9자주포 등 K방산 업체와 무기 4종 계약을 체결했다. 노르웨이 역시 K-9자주포를 구입했다. 칠레는 소형전술차(KLTV)를, 페루(초계함)와 에콰도르(경비함)도 해군 무기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말 기준 수출 국가(누적)만 20곳에 달한다.
무기를 필요로 하는 국가들이 K방산을 먼저 찾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가성비다. K방산 제품은 미국·독일·프랑스 등 무기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성능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K방산은 북한의 위협에 맞서야 하는 특수한 안보 환경에서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가격이 싸면 성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K방산에는 통하지 않는 이유다. 이는 대외적으로도 인정된 사실이다. 올해 2월 노르웨이 전차 수주전에서 현대로템의 K-2전차는 독일 라인메탈사의 레오파르트에 밀려 고배를 마셨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한국과 독일 전차의 성능이 동일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신속한 무기 공급과 원활한 사후 보수도 K방산의 장점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의 특성상 대규모 군 병력을 운영하고 있다. 전투력 유지를 위해 신규 무기 구입과 유지 보수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고 각 방산 기업의 후속 군수 지원 체계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K방산의 제품은 경쟁국 제품과 달리 현재도 양산 중인 경우가 많아 원활한 사후 보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K방산의 힘이다. 최근 수주전은 수입국에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지가 수주를 가르는 핵심 조건이 되는 추세다. K방산은 정부의 방산 지원 체계를 바탕으로 현지에 생산과 기술 이전까지 패키지로 제공하며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