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화창한 날

신현정


집을 돌았다

분꽃을 따 입술에 물고 분꽃을 불면서 돌았다



분꽃 꽁무니가 달착지근했다

장닭을 불면서 돌았다

볏이 불볕 같은 장닭을 불면서 돌았다

나도 목을 길게 빼올리고는 꼬끼오도 해보면서 돌았다

개를 불면서 돌았다

담장을 훌쩍 넘어가라고 애드벌룬만 하게 개를 불면서 돌았다

고무호스를 불면서 돌았다

고무호스를 하늘로 치켜올리고 부웅부웅 불며 돌았다

벌 떼 소리를 내면서 돌았다

먼 골짜기 물소리를 내면서 돌았다

맨발로 돌았다



집아 사방을 뺑 돌아 열려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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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불면서 돌았다.





분꽃을 입술에 물고 돌 때만 해도 고개를 끄떡였다. 나도 어릴 적 사루비아 꽃잎을 불어본 적 있으니까. 대뜸 장닭을 불면서 돌 줄은 몰랐다. 병아리 떼가 뿅뿅뿅 개나리꽃을 물고 간다고 배웠다. 으르렁거리는 개를 불면서 돌 줄은 몰랐다. 고무호스를 불면서 돌 때는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집을 우유 곽처럼 불면서 돌 때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만물을 장난감 삼아 노는 동심의 깊이가 아득하다.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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