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양형의 기술] 감형 노린 '꼼수 공탁'…檢, 진정서 따져 실형

<1>공탁 특례 조사

고시원 샤워실 불법촬영 몰카범

반성·합의 없이 소액 공탁했지만

檢, 피해자 강력처벌 의사 등 확인

초범임에도 '징역 6개월' 법정구속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는 검찰 수사는 공소 제기(재판 청구·기소)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2라운드’는 법정에서 시작된다. 피고인들이 이른바 ‘꼼수 공탁’이나 진심 없는 반성문은 물론 진술회피 등까지 죄를 인정치 않거나 감형받으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혐의를 포착하거나 재범을 막으려는 조치까지 이뤄질 수 있어 검찰의 지녀야할 ‘양형의 기술’의 중요성이 해마다 부각되고 있다. 서울경제는 변화하는 양형인자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 수사기관의 ‘숨은 전략’을 소개한다.






지난해 4월 서울 용산구의 한 고시원. 고요하던 여성 전용 샤워실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던 한 20대 남성이 몰래 샤워실에 침입해 샤워 칸막이 아래로 핸드폰을 넣고 촬영하다 덜미를 잡힌 것이었다. 검찰 조사 결과 남성 A씨는 같은 날 두 여성을 상대로 범행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좁고 폐쇄적인 고시원 안에서 범행을 당한 두 여성은 큰 충격에 빠졌다. 외국에서 유학 온 여성 B씨는 사건 발생 이후 범죄 사실이 순간 생각날 때마다 정신이 혼미해져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등 다치는 일이 잦아지자 결국 본국으로 귀국했다. 이후 수 개월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고시 공부를 하던 또 다른 여성 C씨는 홀로 생활하는 게 어려워져 지방에 있는 가족들과 한동안 함께 지내야 했다. 심리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도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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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과 같이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여성들에게 범행 7개월 뒤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피고인 A씨의 변호인이 합의금 250만원을 제안하며 처벌불원의사를 표현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생활고를 겪던 C씨는 금액에 따라 합의할 의사가 있다고 전했으나, 피고인 측은 그 뒤로 3개월 동안이나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올해 2월 같은 금액을 형사공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형사공탁이란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피고인이 법원에 공탁금을 맡겨 피해자가 받도록 하는 제도다. 당초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아야만 공탁할 수 있었으나, 지난해 12월부터 인적사항을 몰라도 공탁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는 피해자의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알리지 않고, 반성이나 합의 등 없이 단지 공탁만으로 감형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용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검찰도 피고인이 반성이나 사과 없이 소액 공탁 만으로 감형을 노리는 등 악용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혹시 모를 악용 소지를 방지하고자, 제도 변경 이후 각 공판부에 피해자 합의 유무, 양형 인자 확인을 요청하는 양형 조사 의뢰를 진행할 것을 지시해둔 상황이었다. 해당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부장검사 최혁) 김종진 사무관은 즉시 피해자들과 연락을 취했고, 이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음과 동시에 피고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확인했다. 이는 1심 재판부에 양형조사 보고서를 통해 전달됐고, 지난 3월 4일 피고인이 초범인데도 이례적으로 징역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A씨는 당시 법정 구속됐다. 해당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김 사무관은 "공탁 금액에 비해 피해 상황이 가볍지 않았고, 피해자들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해보니 처벌을 원하고 있어 정확한 피해 상황과 의사를 전달했다"며 "진정한 반성 없이 감형 기준을 노린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경제는 해당 기사로 인해 피해자가 2차 가해 등 아픔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익명 처리하는 한편 사건 내용도 실제와는 조금 다르게 각색해 담았습니다.


천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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