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전기차 보급의 확대와 더불어 배터리 산업도 진흥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위험이 크다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광물을 확보하는데 드는 비용에서 다른 국가보다 열세에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EU 재정 감시기구인 유럽회계감사원(ECA)은 19일(현지 시간) 보고서를 발간해 “EU가 새로운 전기차 배터리 산업 수요를 충족할 만한 전략이 사실상 없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배터리 산업에 유입되는 EU 각국의 보조금이 일부 중복되는 등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부족한 행정력도 문제로 지적됐다. 따라서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특히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미국 등 다른 지역을 선호해 EU 시장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게 ECA 보고서의 결론이다.
EU는 탄소중립 목표에 의거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이미 2021년 기준 신차의 20%가 전기차다. 2030년이면 EU 역내 전기차 수는 3000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EU가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 대한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않는다면 탄소중립 목표에 미달하거나, 달성한다 해도 수입 배터리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보고서는 “주로 무역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원자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배터리 생산을 위해 필요한 리튬은 호주산에 87%, 망간은 남아프리카·가봉산이 80%, 흑연도 중국산에 40%를 의존한다. EU 내에도 여러 광물 매장지가 있지만 탐사 후 생산까지 적어도 12~16년이 걸리기에 수요 증가에 신속히 대응할 수 없는 실정이다. 원자재 가격도 급등해, 지난 2년 새 니켈 가격은 70%, 리튬은 무려 870% 급등했다.
아네미 투르텔붐 ECA 위원은 보고서를 공개한 기자회견에서 “EU가 경제적 주권을 지키기 위해 글로벌 배터리 강국이 되기를 열망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좋지 않다”며 “이대로 가면 유럽 산업에 해를 끼치는 건 물론 제3국에서 배터리를 높은 가격에 사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