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 핵심 산업기술이 해외에 유출되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자 여야를 가리지 않고 기술 유출 방지 법안을 잇달아 발의하고 있다.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는 경로를 차단하고 부정행위에 대한 형량 수준을 높여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재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9건의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됐다. 대부분이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안은 첨단전략기술이 외국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유출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골자로 하며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주요 기반시설이나 민감 데이터를 보유한 국내 기업이 외국인 투자로 인한 인수합병 시 정부의 승인이나 신고를 받게 하도록 했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김정호 민주당 의원 등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가장 최근에 대표 발의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안에는 김예지·박수영·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이상헌 민주당 의원, 박완주 무소속 의원 등이 함께 이름을 올리며 해외 기술 유출 방지의 필요성에 여야가 공감대를 이뤘다.
유사한 내용의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7건과 ‘부정 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등도 각각 올라온 상태다. 국가핵심전략기술의 해외 유출뿐만 아니라 영업비밀 침해, 중소기업·스타트업의 기술 탈취 방지 등의 내용도 포함한다.
이처럼 여야가 산업기술 보호에 발 벗고 나선 데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반도체·2차전지·디스플레이 등 산업의 기술 유출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정재계의 공통된 인식에서 비롯됐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던 임원이 반도체 공장 설계 도면을 빼돌려 중국에 공장을 지으려다 이달 검찰에 구속 기소된 사례가 알려지면서 입법의 필요성은 더욱 부각됐다.
업계에서는 기술 유출 범죄가 피해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다며 양형 기준 개선을 호소하기도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최대 경쟁국인 대만의 경우 국가핵심기술을 해외에 유출하면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유기징역과 대만달러 5백만 위안 이상 1억 위안(약 42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반면 한국은 해외 유출 시 기본 징역형은 1년~3년 6개월이며 가중 사유를 반영해도 최대 형량이 6년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