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아파트 분양시장에는 온기가 돌고 있지만 대구 등 지방 미분양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으면서 시공사들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착공에는 들어갔으나 공사비를 제때 못받고 있는데다 원자재값까지 오르면서 책임준공을 확약한 건설사들은 자체자금까지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22일 건설 업계에 따르면 GS건설(006360)은 1350가구 미분양을 기록한 ‘대명자이 그랜드시티’ 공사비 약 5000억 원 중 일부를 자체 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자금 수혈을 위해 금융권과 논의를 이어왔으나 미분양 적체가 심각한 대구여서 신규 대출이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 시행자인 조합은 9월 갚아야 하는 1100억 원 규모 사업비 대출을 1800억 원으로 증액하고 만기를 연장하기 위해 금융기관과 접촉하고 있다. GS건설은 이 중 일부를 공사비로 회수하고 추후 자금 조달에 대해서도 조합과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 단지는 지난해 11월 진행한 1·2순위 청약에서 전체 1482가구 중 132건을 모집하는데 그쳤다.
신세계건설(034300)도 책임준공하는 '대구 칠성동 빌리브 루센트(주상복합)'도 229가구 중 30건의 청약만 받아 사업비를 자체자금으로 집행하고 있다. 올해 3월말까지 약 17억 원의 공사비를 지출했는데 공사 진행률이 아직 30%대 수준이어서 향후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건설(000720)의 '힐스테이트 동대구 센트럴' 역시 478가구 모집에 28가구만 신청이 들어왔다. 책임준공은 아니지만 분양률에 따라 공사비를 지급하는 '분양불' 현장이어서 미분양이 해소돼야 공사비 회수가 가능하다. 대우건설(047040)의 '상인 푸르지오 센터파크'는 공정률에 따라 대금을 받는 기성불로 계약했지만 PF자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지 못하게 되자 후반공사(약 30~40%)는 분양불로 받기로 했다.
이처럼 분양대금이 들어오지 않아 건설사들이 떠안고 있는 주택부문 미청구 공사비는 10대 건설사 기준 올해 3월 기준 8조 원을 넘어섰다. 작년 말 약 6억6000만 원에서 불과 세 달 만에 22% 늘었다. 지방사업장이 많은 중견건설사들을 합치면 못받은 공사 대금은 더 클 전망이다.
시멘트 등 자재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공사기간이 연장돼 PF 채무인수를 하는 사업장도 늘었다. 신세계건설은 지난달 '대구 중구 삼덕동 빌리브프리미어' 책임준공 기한을 넘겨 521억 원의 채무를 인수했다고 공시했다. 남화토건은 경기 고양시 지식산업센터·오피스텔 사업장에 420억 원을, 상지카일룸은 경기 구리 워커힐 한강 공동주택 사업장에 286억 원을 각각 갚아야 한다. 이들 모두 PF 대주단과의 합의를 통해 대출금 상환 시점을 연기하는 등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대부분 미분양이 발생해 자체자금 유출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서울 수도권의 청약시장엔 온기가 돌고 있지만 대구, 울산 등의 지방은 여전히 냉골이다.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평균 청약경쟁률은 5.28대 1로 나타났다. 충북(27.83) 등 일부 호재가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 △전북(0.95) △인천(0.86) △경북(0.57) △충남(0.27) △울산(0.16) △제주(0.12) △전남(0.04) △대구(0.03) 등에서 대거 미분양이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자 금융권도 신규 PF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영세한 시행사 대신 시공사의 신용보강을 요구하면서 자금 회수 장치를 이중으로 확보하는 식이다. DL이앤씨(375500)는 대주단의 요구에 따라 대구 대명2동 명덕지구 주택재개발정비사업 PF대출 3600억 원에 채무보증을 서기 위해 이달 이사회를 열고 보증 한도를 늘렸다. 대부분 시공사의 신용보강은 착공 전 브리지대출 단계에서 이뤄지고 착공 후에는 책임준공 등으로 변경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같은 PF 신용보강 익스포져가 늘어나면 시공사의 신용도에도 영향을 미쳐 추후 자금조달 금리가 훌쩍 뛰거나 현금 확보 자체가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정성훈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실장은 "PF 연대보증과 채무인수, 자금보충 확약 모두 유사시 건설사의 재무부담으로 직접 이어질 수 있어 위험도가 높은 우발채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대주단 협의체 등 PF 지원방안이 착공 전 브리지론 단계에 그쳐 우려가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EOD(기한이익상실)를 내지 않고 만기만 계속 연장할 경우 이자비용 부담으로 추후 본PF 전환시 수익성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개발업계의 한 관계자는 "안될 사업은 정리되고 수익성이 나는 사업만 가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모든 사업장에 인공호흡기만 달아놓은 셈"이라며 "자금 회수 부담이 커진 건설사들이 시공 참여를 꺼리면서 더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