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준칙 도입에 관한 논의가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미 수년 이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5% 이상 부채로 쌓이고 있어 산술적으로만 봐도 10년 후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훌쩍 넘게 된다. 장기 추세가 형성된 고령화·저출산 구조하에서 현 재정 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이보다 훨씬 큰 수치가 실현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러한 우려에도 적자재정 추세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아마도 올해 원자재 가격 충격으로 인한 공기업 부채까지 큰 폭으로 더해지고 조금씩 드러나는 세수 결손이 현실화되면 실질적 의미의 재정적자가 200조 원을 넘어 사상 최악으로 치달을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여기에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재정을 긴축적으로 가져가기 어렵고 추경 편성이 반복되는 현실까지 고려하면 곧 큰 사회경제적 이슈로 국가부채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미 빚에 찌들어 무기력한 사회처럼 잠재적 위기에 모두가 무감각하다. 어느새 빚에 적응되면서 재정적자 누적이 방치되기에 이르렀는데 과연 이래도 무방할까.
낙관적 견해에 따르면 재정적자가 누적되더라도 개별 가구가 이에 걸맞은 저축을 지속적으로 유지해놓고 이를 유산으로 미래 세대에 남겨두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재정적자 해결에 필요한 재원을 당장 세금으로 충당하지 않더라도 저축을 통해 미리 조달해놓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데이터를 보면 가계부채·기업부채 또한 국가부채와 함께 증가하는 양상이어서 이러한 견해는 현실과 너무 거리가 멀다.
한국의 현 재정적자 상황은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으로 보인다. 불과 6~7년 전 추세에 비해 대략 세금을 100조 원 이상 더 걷고 있지만 지출은 200조 원 이상 더 하는 기조가 정착했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추세의 시작은 코로나 팬데믹 전부터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 의외로 우리나라는 팬데믹 기간에 많은 지출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팬데믹 이후 이전 재정 기조로 돌아가더라도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여전히 긴축재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재원 부족이 심각하나 세부 분야별로 재원이 풍족한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지만 이에 대해 손대기도 어렵다.
이러한 상황이 조금 더 이어지면 각종 경제위기 도래 가능성에 시달릴 것이고 운이 좋아 중간에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고 또 각고의 노력을 통해 정상적인 재정 운용으로 회귀하더라도 미래 세대는 소득의 대부분을 조세로 납부하며 경제는 빚과 세금에 짓눌려 무기력한 사회로 전락할 것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엄밀한 분석을 통해 확인된다.
미래를 고려하지 않으며 경직성에 둔감한 재정 운용이 사회경제적 여건상 불가피하다면 강한 재정준칙을 이른 시기에 도입하는 것이 파국을 막고 미래 세대를 조금이라도 보호하는 기틀이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정황상, 그리고 필자의 계산상 더 늦으면 미래가 없다고 본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이 국가부채비율 50%대에서의 대처에 따라 이후 국가의 명운이 현격하게 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