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업체 구글이 한국에 인공지능(AI) 반도체 연구팀을 조직했다. 최근 구글은 AI 시대에 대비해 자체 반도체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양 사 간 파운드리(위탁생산) 협력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최근 한국에 ‘텐서처리장치(TPU) 아키텍처 팀’을 신설했다. TPU 반도체 설계도를 개발하는 조직으로 알려졌다. TPU는 구글이 직접 개발하고 있는 AI 반도체다. 4월 4세대 ‘TPU v4’를 대중에 공개하는 등 반도체 설계 사업을 속도감 있게 전개하고 있다. 그간 이 회사의 반도체 개발은 미국에서 주로 이뤄졌다. 구글은 물론 세계적인 IT 회사가 한국에 반도체 전담 팀을 구성해 연구개발(R&D)을 진행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실제 구글은 자사 웹사이트·링크드인 등 채용 사이트에서 한국 인력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은 컴퓨터·전기전자공학 석사 학위, 2년 이상 칩 설계 경험 등 조건을 제시하며 고급 인력 채용을 모색하고 있다.
글로벌 IT 회사인 구글이 한국에 이 조직을 꾸린 것은 국내에 우수한 반도체 인재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에는 세계 최대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회사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있다. 세계 20위권 팹리스 LX세미콘 외에도 사피온·퓨리오사AI·딥엑스·오픈엣지테크놀로지 등 스타트업의 AI 반도체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구글이 한국에 R&D 팀을 조직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삼성은 메타(페이스북)와 증강현실(AR) 기기 칩 생산 과제를 수행한 경험이 있고 테슬라·엔비디아·퀄컴·IBM 등 유력 IT 회사 칩을 대신 생산하면서 1위 TSMC를 바짝 쫓고 있다. 구글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져 기술 영업을 늘릴 기회를 잡은 셈이다.
다만 거대 기업 구글이 한국 반도체 생태계에 등장하면서 당장 국내 기업의 인력 수혈에 문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8년 뒤인 2031년에는 총 5만 4000명의 반도체 인력이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칩 설계 분야 인력의 경우 국내 중소·중견 기업들은 이미 ‘카드 돌려막기’ 식으로 인력을 수급하고 있다. 국내에서 설계 인력을 가장 많이 확보한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에서도 인력 부족 문제를 고심할 정도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구글의 한국 반도체 시장 진입으로 국내 생태계가 더욱 커질 수 있다”며 “생태계 선순환을 위해 인력 양성에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