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카본 투 그린(Carbon to Green·탄소에서 친환경으로)’ 전략이 시장에서 구체화되는 해가 돼야 합니다.”
국내 1호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의 사업 전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배터리 사업이 안정을 찾아가자 본업인 정유·화학 사업의 그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린 자산 비중 70% 목표를 1년 앞당기고 본격적인 투자를 위해 약 1조 원의 유상증자도 단행했다. 투자 대상도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과 수소·암모니아 등 친환경 신사업으로 ‘탈굴뚝’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29일 “SK이노베이션이 회색에서 그린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겠다고 선언한 지 2년이 됐다”며 “가시적 성과를 보여줄 때가 됐다는 판단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카본 투 그린 전략을 처음 제시하며 2025년까지 그린 사업에 3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그린 사업의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 다방면의 투자를 진행해왔다. 미국 재생플라스틱 전문 기업 퓨어사이클에 55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으며 암모니아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 전문 기업인 미국 아모지에 8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신사업 기술 확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 결과 2021년 30%에 불과했던 그린 자산의 비중은 올해 61%까지 올라왔다. 2025년 목표였던 70% 달성은 1년을 앞당겼다. 2025년부터는 매출도 내겠다는 자신감도 드러냈다.
올 하반기부터는 SMR, 수소·암모니아, 폐기물의 에너지화,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분야에 본격 투자를 확대한다. 이를 위해 약 1조 1800억 원의 유상증자도 단행했다. 그동안 SK이노베이션의 자금 유치는 자회사 SK온의 배터리 사업에 집중돼왔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자회사 자금 조달이 마무리됨에 따라 이번에는 본사 차원에서 신사업 투자를 위한 재원이 필요했던 차례”라며 “장기적으로 배터리 투자만큼이나 SK이노베이션의 카본 투 그린 전략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2025~2026년 SK온의 물적분할 이후를 고려한다면 SK이노베이션 자체 사업 육성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최영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SK온 상장 이후 SK이노베이션은 재차 정유·화학 등 고탄소배출 기업으로 인식되며 기업가치 산정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자체 사업이 ‘구경제’에서 ‘신경제’로 변화가 나타난다면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 확장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신사업이 사업성을 갖는 데까지는 시간 차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매출은 빨라도 2025~2030년부터 인식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울산에 짓고 있는 대규모 재활용 클러스터는 2025년 완공 전부터 이미 판매처를 확보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까지 글로벌 소비재 기업 3개 사와 총 5만 톤 규모에 대한 선판매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