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병원 가기 싫어하던 규리에게 찾아온 변화 “진료 없는 날도 가자고 조르네요”

[르포] 서울대어린이병원 꿈틀꽃씨 쉼터 가보니

서울대어린이병원, 2015년 개소한 '꿈틀꽃씨 쉼터' 재개소

중증 희귀난치병 환자 위한 소아완화의료 프로그램 운영 중

병동연결 포함해 전화·재택방문 등 소통건수 총 1만6141건

이소연(왼쪽) 대학생 나누미 봉사자와 조규리 어린이가 꿈틀꽃씨 쉼터에서 함께 색칠놀이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대병원이소연(왼쪽) 대학생 나누미 봉사자와 조규리 어린이가 꿈틀꽃씨 쉼터에서 함께 색칠놀이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대병원




“선생님, 저 안 늦었죠? 오늘 색칠놀이하기로 약속한 날이에요!”



지난 14일 오전 서울대어린이병원 1층에 자리잡은 ‘꿈틀꽃씨 쉼터’ 문이 열리자 조규리(10) 양이 숨 가쁘게 뛰어 들어왔다. 꿈틀꽃씨는 중증 희귀난치질환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아청소년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소아완화의료 프로그램이다. 꿈틀꿈틀 꿈을 담은 꽃씨가 움트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선생님도 같이 할래요?” 대학생 봉사단으로 참여하는 나누미 선생님과 함께 글라스펜을 이용한 색칠놀이에 열을 올리던 규리가 펜을 건네며 기자에게도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규리는 여덟 살 무렵 유잉육종(Ewing sarcoma) 진단을 받았다. 유잉육종은 뼈에 생기는 소아암 중 하나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소아 및 청소년 연령대에 생기는 악성종약 중 골육종 다음으로 흔한 유형이다. 한창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시기에 항암화학요법과 조혈모세포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던 규리에게 꿈틀꽃씨는 병원에서 유일한 놀이터이자 아지트였다.

규리 엄마는 “입원 중 우연히 꿈틀꿈씨 프로그램을 소개받아 참여한 이후 매일 같이 쉼터에 내려왔다. 외래가 있는 날은 물론 진료가 없는 날도 쉼터에 가자고 나설 정도”라며 “아이들에게 재미없고 두려운 병원이 즐거운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꿈틀꽃씨 존재 자체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편의점이 있던 자리에 쉼터가 들어선 건 2015년 4월. 암이나 심장질환, 대사질환, 신경근육질환 등 중증 희귀난치병으로 오랜 기간 입원해 있거나 수시로 외래, 응급실을 찾는 소아청소년 환자와 가족들이 잠시나마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마련된 공간은 어느덧 9년째 환자들의 꿈을 키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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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완화의료팀은 쉼터를 찾는 이들이 심리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한다. 동화구연, 인형극장 같이 영유아를 위한 이벤트 프로그램부터 청소년을 위한 일러스트, 핸드드립 클래스, 보호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힐링아로마, 공예학교까지 프로그램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4개월간의 리모델링을 통해 영유아들이 즐겨찾는 놀이방을 연상케 하던 알록달록한 느낌 대신 우드 브라운 계열에 화이트 인테리어를 더해 모던한 분위기로 탈바꿈했다. 10대 청소년들도 거부감 없이 쉼터를 이용하길 바라는 취지에서다. 작년 말 기준 꿈틀꿈씨를 이용한 환자는 3370명에 달한다. 환자 1명당 보호자 1명이 동반됐다고 가정하면 월평균 최소 686명이 이용한 셈이다.

김세훈(왼쪽) 어린이와 조아리 대학생 나누미 봉사자가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대병원김세훈(왼쪽) 어린이와 조아리 대학생 나누미 봉사자가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대병원


격리가 필요하거나 거동이 어려워 쉼터에 방문하지 못하는 환자를 나누미 봉사자가 직접 찾아가는 병동연결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다. 최근 피부 통증이 심해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는 김세훈(8) 군은 보드게임을 한아름 안고 병동을 찾은 나누미 선생님을 발견하자마자 함박 웃음을 지었다. 세훈 이는 다섯 살께 전신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전신경화증은 피부, 혈관, 내부 장기가 서서히 두꺼워지거나 딱딱해진다. “순서 먼저 정해야지, 입으로 가위바위보 할래” 주먹을 쥐기 힘든 대신 목청껏 바위를 외치는 세훈이에겐 나누미 선생님과의 만남이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코로나19로 제약이 많았던 지난해에도 총 11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266건, 대면 591건을 포함해 총 857건의 병동연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외에도 전화 및 문자 개입 5543건, 대면 개입 3340건, 외래 및 의료진 논의 2203건, 자원연계 1711건, 재택방문 1003건, 임종돌봄 및 사별관리 486건, 특수학교순회방문 107건 등을 포함해 총 1만 6141건에 달하는 소통이 이뤄졌다.

언뜻 치료와 무관해 보이는 꿈틀꽃씨가 10년 가까이 운영되고 있는 건 수익성에 얽매이지 않고 공간을 내어준 병원 측 배려 뿐 아니라 대학생 나누미 자원봉사자, 다양한 후원의 손길이 이어진 덕분이다. 꿈틀꽃씨는 어린이병원후원회를 비롯한 개인 및 단체의 후원, 유관기관, 국가 등 다양한 지원금을 통해 운영된다. 문이지 사회복지사는 “대학생 때 나누미 봉사자로 참여했던 분들이 취업 이후 기부금을 보내오거나 오랜 기간 쉼터를 이용해 온 보호자, 어린이병원에서 수련을 받은 젊은 의사 선생님들이 물품 또는 정기 후원을 약정하기도 한다”며 “병원에서 한숨 돌리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 좋다는 말을 들을 때면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서울대병원 외에도 칠곡경북대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 등이 꿈틀꽃씨와 같은 쉼터를 운영 중이다. 2018년 7월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을 계기로 소아청소년 완화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은 총 11곳으로 늘었다. 최은화 서울대어린이병원장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을 앓는 소아청소년 환자의 치료 뿐 아니라 삶에 집중하려면 완화의료의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며 “성장발달과 함께 어려운 치료 과정을 거치는 아이들이 치료 외에 마땅한 권리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치료사, 영적돌봄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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