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지표와 자료를 바탕으로 논의합니다. 노사 간 합의는 신뢰성을 지닌 객관적인 자료에 대해 수긍하는 과정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이 지난해 10월 독일 최저임금위원회를 찾아 노사 합의가 가능한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합의가 지표와 자료를 수긍하는 과정’이라는 말은 원론적이다. 하지만 경제 현실보다 ‘우격다짐식 협상’만 반복하는 국내 최저임금 심의의 현실에 빗대보면 당장 바로 세워야 할 원칙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저임금위가 19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5% 인상된 9860원으로 결정했다. 인상률로 보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올해 심의는 수준 못지 않게 15년 만의 노사공 간 합의가 관심사였지만 또 실패했다. 특히 표결에서 노동계의 현실을 무시한 주장으로 공익위원들까지 모두 경영계의 손을 들어주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올해도 최저임금 심의는 파행과 갈등으로 점철됐다. 노동계가 ‘26.9%인상’이라는 비현실적인 카드를 꺼낼 때부터 불량한 협상 태도를 비판하는 지적이 나왔다. 아니면 말고식 요구안으로 상대방을 압박한 뒤 흥정하듯 요구 수준을 낮출 것이라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이에 경영계는 ‘동결’로 맞섰다. 특히 노동계는 사회적 논의를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대표 기구인 최저임금위를 부정하는 자기 모순을 보였다. 시위와 퇴장 등을 반복하며 특정 공익위원의 사퇴를 요구하고 공익위원 운영 과정을 비난했다. 이후 노사는 ‘10원 단위 싸움’을 하면서 지리멸렬한 협상을 이어갔다. 이 결과 ‘1만 원’을 놓고 무려 110일이라는 사상 최장 기간에 걸친 논의가 이뤄졌고 결정 당일에도 15시간에 달하는 ‘밤샘 회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독일 최저임금위는 한국처럼 위원회를 흔들지도, 스스로 흔들리지도 않을 원칙이 분명하다. 노사 각 3명과 전문가 2인, 위원장으로 꾸려진 독일 최저임금위는 철저하게 협상과 심의로 임금 수준을 결정한다. 위원장은 한국의 최저임금 공익위원이 표결을 결정하듯 투표권으로 개입한 사례가 없다. 38년 운영 경험이 있는 국내 최저임금위 위원들이 8년 전 최저임금위를 만든 독일로 날아가 ‘한 수’ 배운 이유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이날 표결 직후 “되도록이면 실증적 증거를 가지고 합의할 수 있는 규범에 근거해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고 ‘110일간의 전투’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