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극우 정부가 추진하는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법안 표결 하루 전 6만 명의 시위대가 운집한 가운데 야당은 ‘밤샘 필리버스터’를 불사했고 미국 정부도 우려를 표명했다. 법안 통과 시 행정부를 견제하는 유일한 장치가 사라진다는 것이 반대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의회의 과반을 점한 집권 연정은 투표를 강행했고 결국 가결되면서 이스라엘 내부의 분열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것으로 우려된다.
24일(현지 시간) AP통신 등 주요외신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주도의 이스라엘 초강경 우파 정부가 국내외의 강력한 저항과 우려에도 사법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법안 처리를 끝내 강행했다.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이날 오후 집권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2∼3차 독회(讀會)를 열고 표결 끝에 법안을 가결 처리했다. 집권 연정은 과반 의석(120석 중 64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이스라엘 정부의 사법부 무력화를 반대하는 시위대는 이날 오전 일찍부터 예루살렘 의회 인근에서 시위를 재개했다. 시위가 고조된 전날 각지에서 모인 시위대는 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대 노동운동 단체인 히스타드루트, 경제 단체 ‘비즈니스포럼’ 소속 150개 기업도 이날 총파업을 실시했다.
밤새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는 동안 의회에서는 야당이 전날 오전 10시부터 24시간 넘게 여당과 합의를 시도했다. 앞서 이달 11일 의회에서 기본법 개정안 1차 투표가 통과된 후 2·3차 투표만 남겨둔 가운데 사전 절차로 의회 토론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연성헌법 역할을 하는 이스라엘의 기본법은 대법원이 ‘합리성’ 판단에 따라 행정부의 주요 결정을 사법 심사로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 조항은 성문헌법이 없는 이스라엘에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유일한 장치로 꼽히는데 개정안은 대법원의 합리성 판단 권한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관철되면 민주주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극우 성향의 현 정부가 소수자 차별, 팔레스타인 탄압 같은 반인권적 정책을 견제 없이 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23일 방미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여권 인사를 만나 합의를 타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역시 성명을 내고 “현재 이스라엘이 직면한 여러 위협과 도전을 고려할 때 정부가 사법 개편을 서두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정부에 타협을 촉구했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에 이스라엘 정국은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