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의 핵심 개념인 혁신에 대해 기존의 주류 이론은 ‘파괴적 혁신’이었다. ‘이것을 파괴하라. 파괴하지 않으면 망한다’. 기업 리더들은 계속해서 기존 산업과 기업을 파괴하는 것이 성장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겨왔다.
여기에 획기적인 이론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학자들이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가 선정한 ‘세계 4대 경영사상가’이자 《블루오션 전략》이라는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고 상징적인 경영서를 쓴 바 있는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수가 그들이다.
최근 두 학자는 6년 만에 《비욘드 디스럽션》이라는 책을 펴내며 또 한 번의 패러다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기존의 것을 뒤엎고 파괴하지 않아도 훌륭한 혁신을 일구어낼 수 있다’며 ‘비파괴적 혁신’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았다. 기존의 것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의미 있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걸까? 예를 들어보자.
2018년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공연이 열렸다. 벤처 기업인 ‘처치 오브 로큰롤’이 주최하고 록 그룹 그레타 밴 플리트가 참여한 이 행사에는 아주 특별한 점이 있었다. 관객의 절반가량은 청각장애를 가진 이들이었다.
누가, 어떻게 이런 공연을 성공시켰을까? 뮤직낫임파서블(M:NI)이라는 회사였다. M:NI의 크리에이터들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착용형 진동감지기를 개발했고, 청각장애인들은 뇌로 전달되는 진동을 통해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M:NI가 이룬 혁신은 ‘파괴’와는 무관했다. 그들은 음악을 접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사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줬다. 기존 시장 또는 산업을 침범하거나 파괴하거나 대체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 시장은 ‘파괴 없이’ 창조됐다.
국내에서도 위니아만도는 김치냉장고 딤채라는 비파괴적 시장 솔루션을 창조했다. 딤채는 김치가 전통적으로 발효되고 저장되던 방식을 모방한 혁신적인 가전제품이다. 1996년 출시된 이 제품은 현재 한국 가정의 85% 이상이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인들이 오래된 제품을 교체함에 따라 2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김치냉장고의 흥행으로 피해를 본 기업은 없었다. 한국의 ‘산후조리원’도 비파괴적 창조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이 책은 30여 년간 ‘블루오션 전략’을 연구해온 저자들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다. 혁신의 스펙트럼 한쪽에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비파괴적 혁신’이 있다. 그리고 이 비파괴적 혁신은 누구도 피해 받지 않고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성장 전략이라는 점에서 치열한 경쟁 짓눌린 지금의 세상에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