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0시30분께 안산시 단원구 안산스마트허브(반월산단)에 자리 잡은 S사.
이 회사는 반월산단에 입주한 1000여개 기업 중 하나로 자동차 보닛 등을 생산한다. 쇠를 다루다 보니 노동자들의 작업복은 기름과 쇳가루가 엉겨 붙어있었다. 작업복은 기중기가 수시로 오가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2의 피부와도 같다. 하지만 일과가 끝나면 골칫덩이. 세탁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 회사 이한종 대표는 최근까지 전문 업체에 세탁을 맡겼다고 한다. 하지만 사원수가 25명에 불과한 작은 업체에서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한 벌 당 4000~5000원의 세탁 비용은 부담스러웠다.
지난 12일 만해로 지식산업센터에서 문을 연 ‘블루밍 세탁소’는 이 대표를 비롯한 노동자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다. 한 벌 당 1000원의 저렴한 비용만 지불하면 ‘수거-세탁-건조-배송’을 원스톱 서비스로 받을 수 있다. S사처럼 50인 이하 소규모 업체가 주대상이다.
S사 이종태(62) 생산총괄은 1976년에 군산에서 상경해서 반월산단에서 금형 일로 잔뼈가 굵었다. 이 총괄은 “철 다루는 일 하다 보니 작업복 빨래가 예전엔 큰일이었다. 집에서는 못했다. 세탁기 고장 나고, 애들 옷하고 같이 빨 수는 없지 않은가. 장마철이면 더 심했다. 몇 날 며칠 그냥 입고 출근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90년대만 해도 리어카로 실어 나르며 세탁 해주는 곳이 있었을 정도였다”며 “이렇게 싼 가격에 뽀송뽀송한 작업복을 아침에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노동자를 칭하는 ‘블루(blue)’와 꽃이 만개한다는 ‘블루밍(blooming)’을 합친 독특한 이름의 이 세탁소 탄생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이민근 안산시장은 지방선거 후보시절 노동자 작업복 세탁 서비스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지만 ‘노동존중’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 블루밍 세탁소를 탄생시켰다. 예산은 사이좋게 절반씩 댔다.
뜻 깊은 출발이다. 이 특별한 세탁소는 흥할 수 있을까. 26일로 개소 14일 째. 처음 10일은 무료서비스 기간이었다. 40개 업체가 세탁을 맡겼다. 이번 주 들어 12개 업체로 줄어들었다. 최종철(63)씨와 이미란(57·여)씨로 구성된 수거·배송조가 1톤 탑차를 몰고 이날 오전 동안 들른 업체는 S사와 H사 두 곳 뿐이었다.
블루밍 세탁소를 위탁 받아 운영하는 경기도장애인복지회 안산지부 이영식 소장은 일종의 ‘조정기’로 보고 있다.
이 소장은 “기존 세탁업체들과 계약을 한 곳도 꽤 있다”며 “무료 서비스 기간이어서 묵혀 둔, 세탁비가 더 드는 동복을 많이 갖고 왔더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좋은 의미로 시작했으니 홍보가 잘 돼 더 많은 업체가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소장을 비롯해 블루밍 세탁소를 움직이는 5명의 직원들은 장애를 안고 있었다. 이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수거, 세탁, 배송, 홍보 등을 분담하고 있었다.
S사 야적장에서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 노동자들이 벗어 놓은 빨래를 개던 이미란씨.
아직 수습사원 처지라는 이씨는 “땀, 기름, 쇳가루 냄새가 때로 힘들지만 사람 냄새 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고 말했다.
이민근 안산시장은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편의 증진을 위해 블루밍 세탁소가 순조롭게 운영될 수 있도록 꼼꼼히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의 관심에 호응한 듯 이날 오후 한국노총 안산지부에서는 작업복 수선할 때 쓰라며 재봉틀한 대를 기증했다. 안산의 이 특별한 세탁소가 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