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몰라요.”
지난해 12월 정부는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시간대나 매월 2회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대형마트, 중소 유통 업계 상생안을 발표했다. 10년 넘게 발목을 잡아온 족쇄가 일부 풀리는 순간이었지만 마트 업계는 요란한 환영보다는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이제 시작’이라는 듯이.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매월 이틀을 대형마트 휴업일로 정하고 영업시간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골목상권 보호와 유통 생태계의 다양성을 위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e커머스의 부상으로 이 규제가 오프라인 채널인 마트와 전통시장 모두의 침체를 불러왔고 법 개정의 필요성도 갈수록 힘을 받게 됐다. 현 정부 들어 규제 개혁 논의가 속도를 내며 지난해 말 업계가 참여한 상생협의체는 휴업일 요일선택권 확대, 영업제한 시간 및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허용을 골자로 한 제도 개선에 합의했다.
문제는 공을 넘겨받은 국회가 7개월 넘게 법 개정에 뒷짐을 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의무휴업일 지정은 지자체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자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지만 휴업일 온라인 배송건은 유통산업발전법에 ‘온라인 판매 허용 조항’을 삽입하는 국회에서의 개정 작업이 필요하다. 현행 유통법에는 온라인 배송에 관한 규정이 없다. 다만 법제처가 ‘대형마트의 물류·배송기지를 활용한 온라인 영업은 점포 영업과 같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려 지금은 매일 새벽, 그리고 대다수 지자체가 의무휴업일로 지정한 일요일에 온라인 주문·배송이 불가능하다. 국회는 이달 5일에야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현안 질의를 통해 개정 절차에 들어갔는데 여야 간 견해 차가 커 개정안 상정 및 통과까지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감한 사안이 또 묻힐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년 전 이맘때 대통령실의 대형마트 규제 완화 국민 제안 투표, 그리고 같은 해 12월 유통 업계 상생안 발표를 취재하며 느낀 업계의 ‘침착’ 이상의 묘한 기류는 어쩌면 척박한 기업 환경에서 생겨난 ‘학습된 체념’인지도 모르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업인의 투자 결정을 막는 결정적 규제, ‘킬러 규제’를 팍팍 걷어내라”고 주문했다. 이해 당사자들이 뜻을 모아 고쳐달라고 한 규제마저 수개월 강제 수면에 들어가는 여의도의 상황을 보면 기업의 의욕을 꺾는 주범이요, 걷어내야 할 ‘진짜 킬러’의 정체는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