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착공한 고려대안암병원 메디콤플렉스 신관이 지하 5층, 지상 12층의 건물로 완성되기까지 꼬박 6년이 걸렸습니다. 설계 등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16년이 소요된 셈이죠. 기준 병실이 5~6인실에서 4인실로 바뀌면서 환자 편의성은 높아지고 감염 위험은 대폭 낮아졌습니다.”
한승범(57) 고려대안암병원장은 2일 “하드웨어뿐 아니라 환자들이 자신의 진료 여정을 미리 알고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등 소프트웨어 변화도 이어지고 있다”며 “환자 중심의 병원 문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올해 4월 취임한 한 병원장은 반평생을 ‘안암골’에서 보냈다. 1991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고 정형외과 전공의 시절부터 임상강사(펠로)를 거쳐 의대 교수로 부임하기까지 20년 넘게 고대안암병원에 몸담았다. 수술실장·진료협력센터장·진료부원장 등을 맡았고 정식 취임 전까지 병원장 직무대행을 수행하며 병원 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기에 메디컴플렉스 신관 오픈이 더욱 남다르다.
“새로운 공간에 디지털 헬스케어 시스템을 하나둘 접목하며 ‘미래형 스마트 병원’의 기준을 제시해 나가겠다”는 발언에서는 설렘이 절로 묻어났다. 고대안암병원은 신관 오픈으로 연면적이 기존 7만 6000㎡에서 14만 5000㎡로 2배가량 넓어졌다. 몸집이 커졌음에도 병상 수를 늘리지 않았기에 환자 1인당 공간이 대폭 확대됐다. 병원 입구인 2층부터 4층까지 이어지는 로비 공간은 아트리움으로 조성해 개방감을 극대화했고 동선 최적화에도 공들였다.
한 원장은 “종로구 명륜동에 있던 혜화병원을 1991년 안암동으로 이전하면서 600병상 규모로 출발했다.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면서 1000병상 규모로 늘어나다 보니 서비스 공간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수익성과 관계없이 의료 서비스의 질 향상과 환자들의 편의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소개했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 외래 진료, 검사, 입원, 수술 등의 여정이 낯설고 힘들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골반뼈 기형이 있거나 종양, 교통사고 등으로 심한 외상을 입은 환자의 재건 수술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국내 최초로 내비게이션을 활용한 인공관절 수술을 시행하는 등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펼쳐왔다.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병원장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여전히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는 순간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병원장 취임 이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하루 80~90명이 몰려드는 외래 진료와 수술 일정을 그대로 소화할 정도다.
이런 그이기에 중증 질환 치료를 담당하는 최종 기관으로서 필수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응급실은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소위 ‘돈이 안 되는 공간’이다. 고대안암병원은 기존 본관에 있던 응급의학센터를 신관 1층으로 옮기면서 공간을 확장하고 중증·외상 환자, 심혈관 질환자, 소아 등으로 공간을 나눠 효율성을 높였다. 사립대학 중 유일하게 중증외상최종치료센터로 지정돼 운영 중이기도 하다.
그는 “중증외상센터·권역외상센터 등은 운영할수록 적자라 대형 병원들도 선뜻 지원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소위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급성기 중증 환자 치료를 끝까지 책임질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국내 대형 병원들이 환자를 의뢰하는 ‘4차병원’으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최근에는 국내외 기업 및 연구 기관들과 손잡고 임상 현장과 환자가 디지털로 연계되는 옴니버스 플랫폼 개발에도 나섰다. 플랫폼이 완성되면 홈케어도 가능하다. 그는 “단순히 환자를 많이 보기보다는 진료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겠다”며 “환자가 병원에 오기 전부터 치료를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간 뒤에도 적절한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전 주기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 병원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