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선생님 아이폰 쓰지 말라"는 민원과 삼성의 고민 [윤기자의 폰폰폰]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사건으로 학부모 ‘진상 민원’ 사례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작성한 ‘학부모 교권침해 민원 사례 모음’도 화제죠. IT 기자 입장에서는 “아이폰 쓰지 말아달라. 애들이 보고 사달라 조른다”는 민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황당한 민원이지만 동시에 10대의 높은 아이폰 선호도를 방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겠죠.

갤럭시Z 플립5의 악세서리들. 뒷면에 장착하면 커버 스크린과 자동 연동된다. 사진제공=삼성전자갤럭시Z 플립5의 악세서리들. 뒷면에 장착하면 커버 스크린과 자동 연동된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몇달 전 모 이동통신사에 재직 중인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도 떠오르더군요. 출산을 계획 중인 친구인데, 아이들이 통신사 ‘키즈폰’을 그렇게 싫어한답니다. 아이들 첫 단말기는 보통 저렴한 키즈폰이 되죠. 키즈폰은 자녀 감시(?)를 위한 각종 기능 제약이 많으니 아이들이 싫어할만 합니다. 게다가 갤럭시A·M 등 하위 라인업 기반인지라 플래그십 스마트폰보다 성능도 나쁩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갤럭시는 ‘나쁜 폰’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는 얘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한국 10대의 아이폰 선호도는 세계 평균보다도 높다고 합니다. 에어드랍, 페이스타임 등 아이폰 전용 기능이 또래 간 집단의식을 형성하게 한다는 분석이 많았습니다만, 제겐 ‘키즈폰 사용자 경험 악화설’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에어드랍, 페이스타임과 유사한 기능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아이메시지보다는 카카오톡을 더 많이, 주로 쓰지 않을까요? 에어드랍 왕따설보다는 사용자 경험 악화설이 좀 더 산업적인 접근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자녀도 없는 30대 중반 아저씨니 요즘 어린 친구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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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다 못해 어린 소비자 층에게 이미지가 악화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실제 노태문 삼성전자(005930) MX사업부장(사장)도 최근 간담회에서 “글로벌 관점에서는 계층별 선호도 차이가 한국만큼 급격하지 않다”면서도 “연령별 제품 선호도 차이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언급했죠. 이 말을 역으로 풀어보면, 한국의 연령·계층별 갤럭시 선호도 차이가 특히 크다는 뜻이 됩니다. 사실 삼성전자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갤럭시Z 플립 시리즈는 젊은층이 선호할 만한 기능성과 디자인, 악세서리를 선보이고 있죠. ‘힙’한 아티스트들과 마케팅 콜라보도 강화 중입니다.

그럼에도 키즈폰은 갤럭시라는 근본 구조를 바꾸긴 어렵습니다. LG전자도 시장에서 철수했고 중국산 저가폰을 들여오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애플 구형 모델은 출고가가 낮지만, 애플이 키즈폰으로 포지셔닝하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습니다. 이통사 아동 전용 앱 설치도 거절할 가능성이 높죠.

애플 아이폰 모델이 된 뉴진스. 사진제공=애플애플 아이폰 모델이 된 뉴진스. 사진제공=애플


키즈폰을 생각하다보니 갤럭시 브랜드 전략에 대한 고민이 따릅니다. 갤럭시A·M·F 등 보급기의 저가 모델은 OEM(위탁생산)이 아닌 ODM(제조업자개발생산)이 된지 오래입니다. 설계까지 타사가 맡고 삼성은 브랜드만 빌려주고 있죠. 자연스럽게 저가 모델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A는 S와 다르다’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 같은 갤럭시일 뿐입니다. 애플 아이폰은 프리미엄 모델만 있지만, 갤럭시는 프리미엄과 보급형이 혼재된 것이죠. 저가형과 ODM을 늘려 글로벌 모바일 1위 자리를 수성해냈지만, 동시에 갤럭시 브랜드 가치는 떨어지게 된 셈입니다. 그리고, 한 번 떨어진 브랜드 가치는 다시 끌어올리기 힘들죠.

이제는 삼성도 다른 브랜드 전략을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가 모델과 프리미엄을 분리하거나, 아예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드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브랜드를 만든 것 처럼 말입니다.


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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