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신발’을 넘어서 패션 아이템으로 사랑받고 있는 스니커즈. 유명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을 한 스니커즈는 수집가들의 오픈런을 부르고 소장용으로 고가에 리셀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니커즈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커질수록 폐기되는 스니커즈도 늘어납니다. 심지어 스니커즈는 여러 소재가 뒤섞여있는 제품이라 분리배출이나 재활용도 어렵습니다. 튼튼하고 가볍고 예쁘면서도 친환경적인 스니커즈는 불가능한 일일까요? 국내 최대 규모 스니커즈 전시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에서 그 단서를 찾아봤습니다.
전 세계에서 1년에 판매되는 스니커즈, OO억 개?
전세계적으로 해마다 240억 켤레의 신발이 생산되고 3억 켤레가 버려진다고 합니다. 한 켤레의 러닝화를 만드는데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이 무려 13.6kg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신발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버려진 후에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스니커즈는 재활용이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 BBC에 따르면 의류와 신발의 재활용 비중은 13.6%인데요. 패션업계 기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텐스 호킨스는 전체 신발 중 5%만이 재활용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재활용되지 못하고 쉽게 버려지는 스니커즈는 합성 섬유와 플라스틱 그리고 합성 고무 등으로 이뤄진, 한 마디로 분리배출이 어렵고 잘 썩지도 않는 쓰레기죠. 언제까지 이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는 위기감에, 스니커즈 회사들은 친환경 스니커즈를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버섯, 커피박 그리고 파인애플 스니커즈
<스니커즈 언박스드 서울>에는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희귀한 스니커즈나 유명인들이 디자인에 참여한 스니커즈 등 보기 힘든 운동화들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비싸고 화려한 운동화보다 에디터가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바로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코너였어요. 사실 다른 코너에 비해 전시된 운동화 개수도 적고, 전시 마지막에 작게 마련된 코너였지만 그래도 쉽게 보기 힘든 친환경 스니커즈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에디터가 본 신박한 친환경 운동화들을 소개해드릴게요.
사진 속 첫 번째 운동화는 아디다스 스탠스미스 마일로라는 제품입니다. 마일로는 운동화 소재로 사용된 식물성 가죽의 이름으로 버섯의 뿌리에 해당하는 균사체를 활용해 만들었어요. 몇 년 전에 버섯으로 만든 에르메스 백이 나왔다고 해서 어떤 소재일지 궁금했었는데, 눈으로 보니 은은한 광택에 매끄러움이 느껴지더라고요. 발등에 샵(#) 표시가 있는 가운데 사진 속 운동화는 핀란드의 스타트업 렌스가 만든 세계 최초의 커피찌꺼기 활용 스니커즈에요. 한 켤레에 커피 찌꺼기 300g과 재활용 플라스틱 병 12개가 사용됐다고. 커피박을 사용해 탈취 효과와 통기성도 뛰어나대요. 마지막 사진 속 제품은 캐나다 신발 브랜드 네이티브 슈즈의 '더 플랜트 슈'로 신발 몸체부터 밑창 등 모든 부자재를 100% 생분해성 식물성 소재로 만들었습니다. 식물성 소재 원료로는 유칼립투스와 파인애플 껍질, 천연 라텍스를 사용했다고.
?예술의 경지까지 가버렸다...스니커즈 '수선'
스니커즈를 보다 환경적으로 소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수선하고 재활용해서 최대한 오래 신는 거죠. 적극적으로 홍보하지도 않고, 절차도 불편하지만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대형 스니커즈 브랜드는 대부분 A/S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나이키를 찾아보니 밑창 교체 등의 '대수선'은 어려워도 구멍이 나거나 한 부분은 짜깁기를 해준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단순 수선에서 한 발 나아가 새로운 디자인으로 스니커즈를 재탄생시키고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도 전시돼 있었는데요. 위 사진 속 첫 번째 빨간 운동화는 도쿄 시부야에 있는 스니커즈 수선복원 전문 매장 르쿠튀르(Recouture)에서 만든 제품입니다. 기존 운동화와 전혀 다른,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탄생 시킨 사례. 발가락 모양이 드러나는 가운데 사진 속 운동화는 헬렌커쿰(Helenkirkum)이라는 분이 만든 작품으로 재활용 소재와 재고 신발을 사용해서 만든 맞춤형 스니커즈입니다. 끝으로 마지막 사진 속 뮬은 암스테르담에 기반을 둔 디자인 스튜디오 겸 의류 브랜드 피터슨 스툽(Peterson stoop)에서 만든 시너지 컬러팝 뮬. 쓰레기 매립지에 버려진 스니커즈를 회수한 뒤 하나하나 분해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조립했습니다. 완성된 신발은 신문지로 포장해 나이키 신발 상자에 넣은 뒤 중고 티셔츠로 만든 더스트백에 담아준대요.
전시를 다 보고 나니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아 흥미로우면서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아직은 이런 친환경 소재의 신발이나 운동화 리폼이 '실험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요. 더욱 환경적인 스니커즈들이 매대에 즐비할 날을 기다려봅니다.
이 기사는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돼 있습니다. 쉽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드는 지구 사랑법을 전해드려요. 제로웨이스트·동물권·플라스틱프리·비건·기후변화 등 다양한 소식을 e메일로 전해드릴게요. 구독 링크와 아카이브는→https://url.kr/use4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