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보증기금이 2025년부터 중소기업의 금융권 대출에 대한 일반보증 규모를 줄일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의 부실이 급증하면서 신보의 재무 상태가 악화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신보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조치로 여겨진다. 하지만 중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수출 회복 전망도 악화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보 이사회는 최근 ‘2023년~2027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의결하는 자리에서 보증 규모를 줄이는 안을 함께 논의했다. 보증 부실률이 내년부터 4%를 웃돌아 신보의 재무구조가 빠르게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보증을 선 대출 채권이 연체돼 부실 처리되면 신보가 차주를 대신해 은행 빚을 갚아야 한다.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경제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신보가 평상시처럼 보증을 해주면 좋겠지만 이 경우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대위변제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진다”면서 “비상 상황에서는 리스크 인수율을 약간이라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책금융기관인 신보가 보증서 발급의 문턱을 높이기로 한 것은 중기와 벤처의 보증 부실이 커졌기 때문이다. 신보는 내년 일반보증 대위변제액이 올해보다 1359억 원 늘어난 2조 486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미룬 원금 상환 시점이 당장 다음 달부터 돌아오면서 가려졌던 부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소상공인 위탁보증 사업 실적마저 악화하고 있다. 위탁보증 사업은 코로나19로 위기를 겪은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부터 3년간 한시 도입됐는데 일반보증과 마찬가지로 올 하반기부터 상환 시점이 돌아온다. 지난달 말 기준 9.17%에 그쳤던 소상공인 위탁보증 부실률은 내년에 14.02%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맞물려 관련 사업의 내년 대위변제액은 올해보다 50% 넘게 늘어난 5555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 공기업 관계자는 “신보가 당초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으로 보증을 지원했는데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 3년 거치 2년 분할상환으로 변경했다”며 “앞으로 2년간 부실 채권이 쏟아지고 신보의 대위변제액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저금리대환 위탁보증 사업과 유동화회사 보증 등 신보의 기타 사업까지 고려하면 내년 총대위변제액은 3조 8139억 원에 달한다. 신보가 한 해 동안 버는 돈(2024년 3조 3494억 원)을 넘어서 당장 내년부터 적자살림을 꾸려야 할 판이다. 신보 관계자는 “당국의 조치로 유예됐던 기업과 소상공인의 대출 상환이 시작된 데다 최근 금리 인상과 경기 악화로 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대위변제액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미뤄둔 ‘코로나 청구서’가 돌아오면서 신보의 재무 부담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신보가 예측한 부채비율(최대치 기준) 추이를 보면 올해 46%에서 내년에 54.8%로 올라선 뒤 2027년에는 86.6%까지 급등하게 된다. 이에 신보는 2025년부터 보증 규모를 줄여 재무 부담을 축소하기로 했다.
문제는 신보가 보증 규모를 줄이면 중기와 벤처 업계의 자금난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벤처 투자액은 4조 4447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2%나 감소했다. 그러지 않아도 좋지 않은 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이 앞으로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중기 자금난→채권 부실→신보 부실→중기 자금난’의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신보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보증 축소 논의에 관여한 한 신보 관계자는 “신보의 기본적 역할은 리스크 인수인데 리스크가 큰 부채에 대한 보증을 줄이겠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경제 환경이 전반적으로 안 좋아져 기업들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만큼 오히려 현장에 있는 사람은 더 힘들어지고 경제도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신보의 재무 부담은 나라 살림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신보는 이미 대위변제액이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보고 정부에 손을 벌리기로 했다. 신보는 당국에 중장기 재무계획을 제출하면서 올해부터 2027년까지 2조 3552억 원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신보는 “코로나19 이후 각종 위기 극복을 위한 보증보험 규모 확대와 경기 둔화 지속에 따른 부실 위험 증가 등으로 매년 정부 출연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