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루블화가 14일(현지 시간) 17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루블화는 모스크바 거래소에서 달러당 101루블까지 거래되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는 통화 가치가 당초 달러 당 약 75루블에서 120루블까지 폭락했던 개전 직후(2022년 2월)를 제외하면 17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쟁이 장기화하며 루블화는 러시아 정부의 자본 통제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수출액 증가에 힘입어 되레 7년 만에 최고치를 회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다시 가치가 25% 가까이 하락하며 정부의 인위적인 방어 조치가 한계에 달했음을 드러냈다. 석유 매출이 서방의 금수 조치와 가격 상한선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원유 가격은 글로벌 침체 우려로 한동안 하락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1~7월 기준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는 전년 동기 대비 85% 쪼그라들었다"며 무역 위축세도 인플레이션을 가속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6월에 발생한 민간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 시도 이후 크렘린궁의 정치적 입지에 의문이 제기되며 루블화 하락세에 불을 붙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러시아 중앙은행은 14일 "인플레이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다음 달 15일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다"고 예고했지만 "루블화의 폭락은 국가 금융 안정성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해 2월 20%까지 끌어올렸던 기준금리를 9월에 도로 7.5%까지 급격히 인하했다가 지난달 8.5%로 재차 인상한 바 있다.
한편 막심 오레쉬킨 러시아 대통령 경제고문은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에 "느슨한 통화정책이 루블화 약세의 원인"이라며 "현재 환율이 기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났지만 머지않아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가까운 장래에 상황을 정상화하고 대출금리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로이터는 전문가를 인용해 "러시아 정부는 루블화 하락을 위해 더욱 강력한 자본 통제 조치를 다시 도입하거나 또 다른 선택지로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면서도 금리 인상 시 내수경제와 러시아 기업 성장에 치명적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